'단편연재'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5.06.23 [인호요한]TRACK 4
  2. 2015.06.18 [인호요한]TRACK 3
  3. 2015.06.17 [인호요한]TRACK 2
  4. 2015.06.15 [인호요한] TRACK 1
  5. 2015.05.20 [장그래가 보는 석율준식] E03. 完 모종의 거래(feat 오과장) 2
  6. 2015.05.11 [장그래가 보는 석율준식]E02.섬유1팀 대리, 그 사람은.. (feat 김대리)
  7. 2015.05.11 [장그래가 보는 석율준식]E01.가엾은 동기 녀석 5

[인호요한]TRACK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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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호요한]TRACK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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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호요한]TRACK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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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호요한] TRACK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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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그래가 보는 석율준식] E03. 完 모종의 거래(feat 오과장)

      




  한 석율은 영악하지 않다. 그는 왕도를 깨우치기보다 정도를 찾고자 했다. 그를 만난 후 알게 된 가장 의외의 모습 이였다. 그가 만약 배우였다면 대략 나오는 감정만을 가지고 무대에서 서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의 삶을 찾아가 직접 겪어 본 후 무대에 올라갔을 거다. 눈앞에 주어진 쉬운 길이 아닌, 올바른 길을 택하는 자. 설령 그것이 어리석다고 주변에서 수근 거려도 자신만은 끝까지 옳은 길 이라고 믿는 신념. 그 점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우리 오과장님과 많이 닮았다. 그가 과장님을 두고 자신과 닮았다는 소리에 대놓고 인상을 구긴 것은 그걸 본인이 너무 잘 아는 뻔뻔함에 대한 반감. 그가 그럴수록 도리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가난한 마음에 서 나온 것이 였으리라. 아무튼 나는 갑작스러운 성 대리님의 이상 행동 앞에 숨겨진 부스러기를 보지 못하는 그를 이해 할 수 있다. 그는 영악하지 않으니까. 그는 제 사수와는 달리 '괜찮은'사람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의심은 해야 하지 않을까. 왜, 어째서. 성 대리 그는 변했는지. 그리고 마침내 한 석율은 무언가 생각난 듯 주먹을 테이블에 내리쳤다.


"대박."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이제 뭔지 알겠어요?"


그도 흥분했는지 소매를 한단 접으면서 대답했다.


"대리님도 날 좋아하는 거였어."


하마터면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뿜을 뻔했다. 아. 이 호구자식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렇잖아. 아니 내가 뭐만하면 좋아한다니까 장 그래, 네가 봐도 대리님이 이상하다 매.

그럼 뭐야 성대리가 나 좋아하는 거 말고 더 설명할 수 있어? 어? 이거야. 답이 딱 나오네."


나는 잠시 생각하는 기능을 멈췄다. 한석율의 기가 차는 발언에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화학작용으로 생각이 정

지 돼 버린 것 같았다.아무래도 포기하는 게 낫겠단 싶은 생각에 미치자 나는 내리쬐는 햇 살을 못 이기고 눈에 잠을 매달았던 나른한 오후를 떠올렸다. 뒷목에 누군가의 손 길이 닿아, 눈을 떴을 때 눈 앞엔 점심식사를 마치고 온 오과장님이 계셨다. 그는 자리를 박치고 일어나는 나를 보고는 잠을 제대로 못 자구만 하며 혀를 찼다.그렇게 말하는 그도 잔뜩 피곤한 얼굴이었다. 원래 항상 피곤해보였지만 앞서 진행된 일이 잘 끝났을 때와 잘 되지 않았을 때 드러나는 얼굴은 달랐다. 그 날은 후자에 가까웠다. 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아꼈다. 그는 그럼에도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그 쪽에서 우리 쪽 제안이 맘에 안 들었던 모양이야."

"그렇다면...."

"상황이 안 좋아졌지만 뭐 일단 살려봐야지."


과장님은 자리에 앉아 보충 할 서류를 찾고 계셨다.나는 우두커니 서서 사무실 가득 퍼지는 바삐 움직이는 소리에 하염없이 침묵했다.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차질없이 진행 될 아이템은 과장님이 간절히 고대했던 것이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나 에게 모든 걸 일임했다. 그 제안서는 내 이름으로 올라갔고, 보기 좋게 까였다.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과장님은 개의치 않다는 듯 모니터 화면을 주시했다. 나는 속에서 울컥 차오르는 설움을 토해냈다. 죄스러운 마음을 덜어내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뭘 어떻게 해."

"진행 과정부터 좋은 징조가 보였잖아요. 그런데..."


그런데 담당자가 나라서, 계약직 사원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서 무마된 것이다. 하물며 과장님은 알고있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이미 엎어진 일을 진행하려는 것이다.


"장그래"


과장님은 모니터에 시선을 거둬 내게 던졌다. 아주 편안한 눈길 이였다.


"자주 변하는 사람이 있어. 윗사람 아랫사람 구분하고 자기체면 살릴 사람 죽일 사람 구분하고 접근 하는 사람들. 그 사람도 그런 거야 네 잘 못 아냐."

"그럼 그런 사람들 앞에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재우쳐 묻자 그가 대답했다.


"피할 수 있음 최선을 다해서 피해, 하지만 피할 수 없을 땐 거래라도 해서 그 사람을 내편으로 두는게 좋아."


이용당하지 않을려면 말이야. 과장님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모니터 화면을 보았다. 이윽고, 김 대리님과 천과장님이 들어와서 더 묻지 못했다. 해가 서쪽으로 차츰 기울어가면서 타자소리, 바삭거리는 종이소리, 펜 똑딱 소리가 적막하게 울렸다. 딸깍, 소리가 나자 화면에는 며칠간 밤을 지새웠던 서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음이 후련했다. 나 자신을 비우는 것. 그 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였던 같다.


"장그래"

"네?"

"뭐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나는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들어올 때부터 가슴께가 뻐근해 질 정도로 시끄러운 비트음악이 아닌 이번에는 느릿하고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흘러 나왔다. 한 석율은 비어진 잔에 술을 따랐다. 이미 양껏 마시고 취했는데도 무언가 부족한지 한 석율은 계속해서 마셔댔다. 맑고 투명한 술이 잔에 담겨 출렁였다. 그는 단 숨에 들이켰지만 속 깊이 까지 시원하게 비워내지 못한 잔을 무겁게 내려놓았다.


"나도 알아, 성 대리 그 자식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단 거."


나는 가만히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건 뭔지 알아?"


음악이 잠시 멎었다. 한 석율의 얼굴은 조명 때문인지는 몰라도 붉게 달아올랐다.


"내가 그걸 모른 척 하고 싶다는 거."


한 석율은 맞은편에 있는 새 술병을 잡을려다가 손이 미끄려져 그만 놓치고 말았다. 나는 재빨리 병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안영이씨가 먼저 잡고는 그의 잔을 찾았다. 내가 따르겠다고 다시 한 번 손을 뻗자 영이씨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따르게 해달라는 부탁 이었다.


"지금 전화해보지 그래요?"


안영이씨가 말했다.


"누구? 성대리?"


"네.정확히 뭘 원하냐고요."


나도 거들었다. 싸움하기에 앞서 상대가 나보다 우세할 땐 기다리는 것이 이롭다. 실력이 아직 부족하다면 말이

다. 하지만 상대의 패를 이미 알고 있을 경우는 다르다. 간단하다. 똑같은 패로 응수 하거나, 아니면 뒤집거나. 이때 한석율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보자, 한 석율은 핸드폰을 우리 앞에 요란하게 흔들어 댔다.


"이거 봐,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받아보세요."


핸드폰 액정에는 '성준식 대리님' 라고 적혀있었다. 한 석율은 몇 초간 고민 하더니,힘 없이 핸드폰을 들어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한 석율의 표정이 미묘하게 얽혀졌다. 기쁜 것도 아니고 괴로운 것도 아닌, 불안감과 평온함, 설렘과 권태, 그 사이 어디 중간의 감정들이 그의 눈에, 볼에 ,콧 망울에, 입술에 매달렸다. '사랑'이라는 것은 저리도 알 수 없는 것일까. 그는 통화를 마치고 조심스레 일어났다. 그는 조급함과 미안함이 젖어들며 말했다.


"나 먼저 가봐야 될 것 같은데."

"가 봐요."

"얼른 가요 우리도 곧 갈 거예요."

"고마워, 술값 계산하고 갈게. 나중에 또 자리 마련해."


한 석율은 일어나 코트를 여미고 낮은 숨을 뱉었다. 나는 돌아서려는 그를 붙잡았다.


"한 석율씨."

"응?"

"거래하세요.피할 수 없다면요."


그가 내 말을 이해 했는지 미간을 찡긋 거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가게 문을 열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은 선 홍빛 꽃이 활짝 핀 것 마냥 웃고 있었다.



---



한석율은 예전처럼 15층에 자주 내려왔다.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몸짓, 손짓을 움직여가며 걸음 따라 노

래를 흥얼거렸고 사내에 퍼진 가십거리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한 석율 그다웠다. 그의 옷은 언제나 깔끔했고 같은 셔츠라도 두 번 연속 입은 적이 없는데다가, 넥타이색과 질감 셔츠의 표면적 부피감 까지 계산한 그의 오피스 룩은 실로 완벽했다. 하지만.


"한 석율씨"

"음흠?"

"아닙니다."


나는 번번이 그의 넥타이가 구겨져있고, 버클이 느슨하게 풀려있고, 셔츠 단추가 뜯어져 있는 걸 매번 모른척했다. 그가 제 상사와 모종의 거래를 하고 있고, 또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다는 일종의 '보고서'라고 생각하는 쪽이 훨씬 즐거우니까 말이다.




-장그래가 보는 석율준식 完





내용이 갑자기 차분해져서 쓰는 저도 당황.

그냥 버리는 글이 되어버렸다.. 




[장그래가 보는 석율준식]E02.섬유1팀 대리, 그 사람은.. (feat 김대리)


        어느 늦은 오후, 김 대리님과 단 둘이 남은 업무를 마저 처리하고 있었을 때다.


"자네 동기 한석율 말이야. 요새 일을 잘하나봐. 성대리가 좋아하대."

"예?"

"요새 그 친구 만나면 한석율 칭찬 밖에 안 해."


같이 볼일을 보던 대리님이 몸을 부르르 엷게 떨고서 말을 이었다.


"까다로운 친구인데 한석율인 어떻게 사로 잡은거야 글쎄."


말을 마치고 장 그래도 변해서 날 좀 홀렸으면 좋겠네 하고 중얼 거리는걸 나는 가뿐히 무시하고 어떤 상념에 빠졌다. 합리적이고 정확성을 따지는 김 대리님은 성 대리님을 까다로운 친구라고 일관했다. 주로 어떤 점에서 그러느냐고 여쭤보면 글쎄, 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다가 이내, 주관이 자주 바뀌는 것 같아, 그래서 맞춰주기가 힘들지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사람은 괜찮아 를 덧붙이는 걸 잊지 않으면서. 동기들에게 성 대리님은 까다롭지만 괜찮은 사람으로 통하는 듯 했다.하지만 나 같은 부하직원이 보는 성 대리님은, 적어도 '괜찮은'이라는 수식어는 조금 과분 한듯 싶다.


"그 반대가 아닐까요?"


상념 속에 휘말려 나도 모르게 진심이 나오고 말았다. 입사 초기 때부터 성 대리님에 대해 줄곧 생각했던 진심. 나 같은 일개 계약직 사원이 다른 직원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게 못내 불편한 일이지만 적어도 성 대리님의 행동거지는 실로, 위험하고 골치 아팠다. 그가 내 상사였다면 나는 틀림없이 환멸을 느껴 차가운 건물을 등지고 나왔을 터였다. 방금 뭐라고 그랬어 장그래? 대리님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물었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가만 보면 혼잣말 자주해 하고 손가락질 하는 대리님에게 나는 냅다, 물었다. 대리들이 모여서 하는 얘기들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 그러면서 내 존재를 내 상사에게 일깨워 주고 싶은 조그만 바람이 담긴 순수한 질문 이였다. 마침, 최근에 내 제안서가 높이 평가 되어 타팀에서도 칭찬 받은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저...대리님, 대리님은 어디 가서 제 얘기 안하십니까?"


그러자 대리님은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대답했다.


"장그래. 얼른 손 닦고 가서 일해."


나는 또 괜한 걸 기대했던 모양이다.



***



  우연한 목격이란 것은 정말로 불편 하다. 원하지 않은 상황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 예상하지 않던 사고를 요구하는 법 이였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재수 없게 목격한 사람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된다. 나는 우연히 그 길을 향해가고 있었고 우연치 않게 통화 내용을 들었다. 아니 자리를 피하지 않았으므로 엿들었다가 맞는 걸까. 남자는 즐거워 보였다. 자신의 순리대로 일이 차근차근 진행되는 점에서 오는 즐거움 같았다. 1층 엘리베이터 앞, 그다지 비밀스럽지 않은 장소에서 시끄럽게 통화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만한 통화내용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석율'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면 나 또한 그냥 넘겼을 것이다. 남자는 한 석울을 자기 팀에 새로 들어온 신입이라고 말했다. 비실비실한 게 촌스럽게도 생겼다며 울산촌놈 냄새도 난다고 했다. 그의 사원증 에는 섬유 1팀 대리 '성준식'이라고 적혀있었다. 비실비실 거리며 울산 촌놈 냄새에 촌스럽게 생긴 섬유 1팀 한 석율이 세상 다가진 표정으로 외쳐댔던 그 이름이 성준식이 아니길 바라며 나는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남자는 내 존재를 모르는 것 같았다. 한참 재미있는 통화에 집중 하고 있기도 하고, 처음 보는 얼굴에 어디 신입 나부랭이 정도라고 짐작 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이라 통화 연결이 지저분하게 들림에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떠들었다. '돈이 많대' '재미 좀 볼 려고' 다소 이맛살을 구길 만한 얘기가 나왔다. 화제가 여전히 자기 팀에 새로 들어온 신입이라는 사실에 들어서는 안 되는 얘길 들을것 같아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것에 후회가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이 얘기를 당사자에게 들려 줘야 하는 것인가를 고민했다. 하지만 더 큰 상황을 초래할게 두려워 말하지 않았다. 처음 던진 '수' 만보고서 상대의 '수'를 모두 판단하는 것은 바둑을 둘 때도 경계했던 점이다. 나는 못들은 척 잠자코 엘리베이터가 예정된 15층에 닿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는 내가 내릴 15층에 섰다. 여전히 통화를 하고 있는 남자를 뒤로 하고 내릴려는 찰나에 냉랭하고 비열한 남자의 목소리가 뒷목이 화끈 해질 정도로 날카롭게 꽂혔다.


"신입이 선배한테 인사도 안 해."


아차,내가 당황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급히 허리를 숙였을 때 그는 이미 닫힘 버튼을 눌렀고 곧 바로 철문 사이로 사라졌다. 입사 초기 비릿했던 섬유 2팀 성 준식 대리와의 첫 만남. 이것이 실로 '괜찮은'이라는 수식어를 감히 그 앞에 사용할 수 없는 이유다.


"정말 모르시겠냐고요."


슬슬 취기가 올라 말투가 거칠어졌다. 그럼에도 한 석율은 여전히 모르겠단 얼굴이였고 안 영씨는 알듯 말듯 한 표정을 지었다.





[장그래가 보는 석율준식]E01.가엾은 동기 녀석



         아까부터 동기사랑 나라사랑을 운운하며 동기 좋은 게 뭐냐며 쉬지 않고 마시던 녀석은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옆 테이블이며 앞 테이블이며 여러 사람 피곤하게 진상이란 진상은 다 떨고 있었다. 백기씨는 안경을 고쳐 잡고는 내일 아침 회의가 있다며 한석울의 코가 삐뚤어 지기 전에 부리나케 자리를 빠져나갔고 안영이씨는 한 석율 이란 작자의 술주정은 받아줄 맘도 보고 싶은 맘도 없으니 어서 빨리 그쪽이 해결해 보라는 심사로 나에게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었다. 나는 회사업무를 마치고 곧장 집으로가, 김 대리님과 오 과장남이 계신 사내 인트라넷에 적적하고 고즈넉한 새벽 분위기를 빌려 긴 글을 남길 생각 이였지만 이 한 석율 이라는 입사동기가 내 일주일의 마침표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여자를 좋아하는데. 응? 너네 다 알잖아. 그래 안 그래?"


이 말만 지금 열다섯 번 째 다. 사람의 인내는 한계가 있고 내 한계는 보통 사람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쪽이지만 그 상대가 한 석율이라면 얘기부터가 다르다. 지금이라도 이 자식의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지만 안영이씨가 있어 그건 안 되겠다. 배가 아프다며 일어날까, 아니면 전화를 받고 급한 볼 일인 척 슬그머니 내뺄까. 생각하다가 아뿔싸, 순간, 벌겋게 달아오른 제 볼을 내 볼에 문지르는 통에 이성이 끊겨버리고 만 지금이다.


"아,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봐, 같은 남자랑 비벼도 난 아무렇지 않다고"


뭐라는 건가. 뺨에 타인의 뜨거운 촉감이 닿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불쾌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그를 마주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 더 가관이다. 저 자식이 먼저 했는데 왜 저 자식이 더 구린 얼굴을 하고 있는가. 한 술 더 떠 세상 다 산 얼굴로 한숨을 쉬더니 이모, 여기 한 병 더요 한다. 병을 건네받고 맛깔나게 소주를 딴 그는 취한 와중에도 다른 사람 잔부터 챙겨주는 다정함을-타고난 사회성이 뒷받침된 접대습관이 옳은 표현 일지도-보여주며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따라주는 것 이였다. 건네받은 잔에 옹졸한 감탄을 삭히고 한 모금 쭉 들이켰다. 술에 취하되 분위기에 취하지 않는 것이 나의 철칙인데, 이상하게 한 석율과 같이 있으면 조절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자식과 좀처럼 마시지 않는데. 오늘은 무언가, 그래, 그에게 다른 분위기가 흐르는 것 같다. 절대 내가 취해서가 아니다.


"안영이 너는 남자고, 아니, 뭐래 아니, 안영이씨는 그런 적 없어?"

"뭐가요?"


가히 안영이다. 술 취한 사람의 어처구니없는 질문에도 당황하는 티조차 내지 않는 저 여자의 놀라운 평정심에 박수를 치고 싶을 지경이다.


"같은, 딸꾹, 동성을 좋아하는 거."


나는 또 다시 제 볼을 비벼대는 한 석율을 힘을 주어 간신히 떼어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의 말은, 요점은


"내가 성 대리님을 좋아하는 것 같아"


안영이씨는 말없이 소주잔을 입에 털어놓았고 나는 마시던 술을 벌컥 쏟아냈다. 이 자식이 지금 뭐라는 건가.


"아니, 나만 보면 갖은 인상이란 인상은 다 쓰던 놈이, 언제부터인가 헤실 웃어, 어? 나만 보면.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나는 또 그게"


그가 팔을 굽혀 고개를 떨구더니 힘 빠진 웃음을 흘리면서 말을 이었다.


"예뻐 죽겠어."


그 순간, 침묵의 소용돌이가 우리가 머물고 있는 테이블을 직격타 한 듯, 세상 속 에서 철저히 단절된 기분이 들었다. 영이씨와 나는 섣불리 입을 열 수 없었으며 우리는 침착하게 두 가지 결론을 도출해냈다.-그녀도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감으로 알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한 석율씨는 훨씬 더 비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결론과, 한시 빨리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도망치는 것 밖에 살 길이 없다는 결론. 객관적으로 봐서도 그는 두 가지로 정의 내릴 수 있었다. 취했거나 혹은 미쳤거나. 그러나 안영이씨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나는 2차 충격을 받았다.


"한석율씨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게 맞는 거겠죠."

"네?"

"그렇지? 역시 안영이. 내 과야 내 과."


안영이씨는 한석율의 과장된 몸짓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잔을 훔쳤다. 나는 보았다. 잔 너머로 그녀의 입 꼬리가 기분 좋게 실룩거리는 것을. 그녀는 즐기고 있었다. 그 광경이 믿기 힘들어 벙 찐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번엔 그가 나를 향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하라는 식의 어조였다.


"장 그래 너는?"


나는 떨리는 손을 다잡고 물을 들이마셨다. 턱을 괸 채로 마주앉은 한 석율의 눈가가 촉촉하다. 일주일을 마무리 짓는 금요일 저녁, 동기들과의 회식. 으레 업무 얘기가 오가고 한 주 동안 뭉쳐있던 답답한 마음이 잔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눈 녹듯이 사라지는 자리에서 한 석율, 그는 주로 듣는 포지션으로 상대의 말이 끝나면 적절한 조언을 해주던 사람이었다. 대화의 중심은 창피하지만 주로 나였으며 그 시선이 하나로 쏠리는데 있어서는 그의 입담이 컸다. 화두를 꺼내 말문을 열게 만들고 과장되게 호응하는 그를 볼 때 마다 그가 나를 띄워 줌과 동시에 자신이 겪고 있는 곤경을 가리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때때로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었지만 그가 직접 입으로 꺼낼 시기를 기다렸다. 어쩌면 지금이 적기 일지 모른다.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 지경까지 올 때 까지 한 석율 이라면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로 숨 막힌 과정을 겪고 왔을 거다. 그렇다면 나도 진정한 '수'를 놓아야 할 거다.


"말해봐 장 그래 너는 내가 이상한 것 같아?"

"예, 이상합니다. 그것도 좀 많이"

"그렇지, 역시 내가 이상한거지"


모든 걸 놓아버린 듯, 그가 술을 털어놓고 쓰게 웃었다. 원인은 믿기 힘들지만 사랑 이였다. 요 근래 한 석율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던 이유말이다. 무엇 때문인지, 그는 예전과 달리 좀처럼 15층에 내려오지를 않았다. 입사 초기 그는 입이 닳도록 말했던 '살아있는 현장'을 떠나 갑갑한 사무실에 내던져지자 한 동안 매가리 없이 형광등 불빛 아래서 끔벅 끔벅 눈만 비벼댔었다. 이 사무실에서 그가 선택한 유일한 낙은 15층에 내려와 동기들을 불러놓고 쉴 새 없이 떠드는 것 이였다. 넥타이를 바로잡고 본격적으로 털어놓는 얘깃거리에는 사내에 도는 시시껄렁한 이야기.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소식이 대다 수였지만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리던 것은 제 상사, 모두 성 대리님의 뒷담화 였다. 그 중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 보이는 -한 석율의 악의가 담긴 -추측도 있었고 더 나아가서는 불투명한 사실들로 그의 인격을 깎아 내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서 우리는 그가 하는 얘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 성 대리님은 나밖에 몰라'에서 '님'과'우리'를 빼고 '성 대리'에서 '그 새끼'가 되기까지, 약 육 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성 대리라는 이름을 입에 달고 살았던 그가 15층에 아주 가끔 내려오는 그로.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성 대리를 씹어대었던 그가 우리 쪽에서 안부를 묻고 나서야 상사 얘기가 간신히 나오는 그로 변해 있었다. 그에게 요즘 자주 안내려 오시네요? 라고 안영이씨가 넌지시 물었을 때 씩 웃고 넘긴 이유가 술자리에서가 아니면 다소 설명하기 복잡한, 제 원수와 사랑에 빠진 거였다니. 웃어주기도 축하해주기도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한 석율 자기 혼자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저 자식은 알기나 하는 건지 찬 물을 들이켜도 영 시원치 않았다.


"아니, 한 석율씨 말고 성대리님이요."


한 석율이 힘없이 고개를 들어 내 쪽을 올려다본다. 안영이씨는 더욱이 흥미롭단 눈빛으로 턱 까지 괴면서 보고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한 석율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 모르겠습니까?"


석율은 정말 모르겠단 얼굴로 목덜미를 긁었다. 왜? 라는 처연한 물음에 목소리 까지 쉬는 바람에 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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