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러너'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5.07.14 [토미뉴트]호기심
  2. 2015.07.14 [민호뉴트]프로포즈
  3. 2015.05.20 [민갤톰]소년들의 이야기
  4. 2015.05.19 [스코치 트라이얼] 예고편
  5. 2015.05.10 [민톰] 위키드 연구원 k의 일기
  6. 2015.05.10 [민호뉴트 ] 가끔은 네가 미치도록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7. 2015.05.10 [민호뉴트]우심뽀까
  8. 2015.05.10 [민호뉴트] 같은 운명 <19금>

[토미뉴트]호기심

*오류가 생겨서 다시 올림. 





*이글은 원작기반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메이즈러너 1권 스포 有

 

 

 해가 완전히 저문 뒤 어둠이 내려앉은 글레이드의 하늘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수십 개의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몸짓으로 제 빛을 과시하는 것 같았다. 토마스는 가볍게 눈을 비볐다. 오늘 하루 벌어진 일에 대해서 곱씹어보니 도저히 잠이 오지를 않았다. 오늘은 무사히 잘 넘겼다 한들,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닥쳐올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눈만 뜨고 허공을 응시한 채 있는 것도 십 여분째, 토마스는 잠도 오지도 않은 빌어먹을 잠자리를 박차고 나와 혼자 밤 공기를 들이 마쉬며 돌아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주변 곳곳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코고는 소리는 모든 게 비현실 같은 끔찍한 이 곳에서 그나마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아 토마스의 마음을 놓이게 했다.


해먹 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숲에서 나와, 조금은 쌀쌀한 공기를 손으로 휘 젓고 터벅터벅 걸어나오니, 저 만치에서 빛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이곳 아이들이 '본부'라 부르는 낡은 목조건물에서 뻗어 나오는 빛이 였다. 아주 희미했지만, 온 세상이 컴컴한 곳에서 세어 나오는 빛이라 한눈에 들어왔다. 순간. 발걸음속도를 늦출 수 밖에 없었다. 뇌 속에 각인된 기억을 되뇌어보자, 그곳은 자신이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 이였다. 가슴 한 켠에서 궁금증이 스물스물 기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척이 말하길, 본부는 한마디로 집이라고 보면 된다고 하였다. 주방, 안건을 제시해 회의가 열리는 곳, 그리고 욕실과 화장실. 그렇다면, 자신처럼 간밤에 뒤척이던 누군가가 볼일을 보러 들어간걸 수 도 있겠다 싶었다. 토마스는 걸음을 본부가 아닌 다른 곳으로 옮길려다가. 이내 생각을 고쳤다. 이왕 일어난거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아랫 주머니가 그곳으로 향하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건물에 다다르자, 또르르-물 한 바가지를 퍼부어 바닥에 흩어지는 물소리가 났다. 제법 멀리서 나는 소리 같으나 원래 밤에는 개미 발자국 소리 하나라도 크게 들리는 

법이였다. 토마스는 아차 했다. 여기 오는데까지 그리 급하다고 생각 못했던 신호가 물소리를 듣고 별안간 비명을 지르는듯했다. 등줄기에서부터 아래까지 소름이 돋았다. 빨리 시원하게 비우고 싶은 충동이 차 올랐다. 토마스는 재빨리 물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첫 하룻밤을 묵는 토마스 였으니. 화장실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토마스는 알 길이 없었다. 젠장, 바보 같은 꼬마녀석 대충 있다고만하지 말고 위치를 알려줄 것이지. 잔뜩 짜증이 난 토마스는 지금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척을 원망하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벽을 짚고 아까부터 계속 들렸던 물소리에 집중 하며 걸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아랫도리에 감각이 점점 무뎌졌고 문득, 욕실에 누가 들어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청승맞게 도대체 누가 목욕 중 인걸까. 소리가 난 곳이 점점 가까워 질 수록 물소리도 점점 멎어지는 듯했다. 욕실에 있는 사람이 누군가 이리로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 챈 것 같았다. 토마스는 그제서야 발 소리를 죽였다. 살금살금, 도둑걸음을 한 채로, 본부 건물과 맞닿아있는 벽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욕실이라 미루어 짐작하는 곳엔 조그만한 창이 하나 나있었다. 안에서 따뜻한 공기가 세어 나와 맞은 편에 있는 딱딱한 돌과 건조한 담쟁이넝쿨을 부드러운 손길로 매만지는 것 같았다. 잠시 중단된 물소리가 다시 들렸다. 또르르- 아까보다 손이 조금 급해진 것 같아 토마스는 더욱 숨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별안간 이곳에 들려 누구 목욕하는 것이나 훔쳐보게 된 상황이 비로소 어이없단 생각이 들었지만 주변을 돌아봐도 저 말고는 아무도 없을 뿐더러 그 누군가가 됐더라도 자신처럼 호기심에 못 이겨 이리로 들어 왔을거라 확신하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독였다.


이제 고개만 조금 내밀면 욕실에 있는 소년이 누군지 알게 될 정도로 어느새 창가 바로 아래까지 와버렸다. 하지만 토마스는 이내 내면 깊숙한 곳부터 걱정과 후회가 밀려오기시작했다. 만약에 욕실에 있던 사람이 자신이 그렇게 증오하는 갤리면 어떻게 하지. 만약 그렇다면 이 새벽에 난데없는 추격전을 벌일지도 모른다. 굳이 갤리가 아니여도 상식적으로 그 누가되었든 여기 서있는 토마스를 좋게 볼 사람 은 없을것이다. 급격히 피곤해진 토마스는 어깨를 부르르 털었다. 그래,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깔끔하게 얼굴만 보고 가자. 보고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내일 아침 평온하게 일어나면 되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마치자, 토마스는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창틀이 생각보다 높아서 까치발을 해야 창너 머 풍경이 시야에 들어올 수 있었다. 토마스는 갑자기 밝은 빛을 마주하게 되자 따가워서 눈살을 찌푸렸다. 빛에 점점 익숙해졌을 때 쯤 되야 살며시 눈을 뜰 수 있었다.


눈 앞에 비치는 흰 뿌연 김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욕실에 있는 소년의 정체를. 물기를 가득 먹은 금발은 아까 보았던 수 많은 별들 중 하나가 욕실로 숨어 들어 온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욕실 안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쭉 뻗은 얄쌍한 몸은 뇌리에 깊숙이 저장된 기억의 조각으로부터 동양사에서나 보았던 희고 고운 백자의 이미지를 생각나게 했다. 물길을 끼얹는 소년의 모습은 마치 마법의 숲에 있을법한 요정처럼 신비로웠다. 요정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기억이 안났지만 분명 눈 앞에 있는 소년과 비슷한 모습일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토마스는 저도 모르게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려고 하는 것을 가진 정신력을 쏟아 바로 잡았다. 마저 몸을 헹구어 내고 있는 뉴트는 분명 벗었지만 벗은 게 아니었다. 그것이 벌거벗었다는 표현이 너무 염치없게 들릴 정도로 그 육체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애초에 자신을 이리로 오게 만든 생리학적 현상 따위도 모두 거스를 수 있는 광경에 넋을 놓고말았다. 후회? 퍽이나. 이 광경을 보지 못했더라면 토마스는 더 큰 후회를 했으리라.


토마스는 비좁게 나있는 난간에 발을 올렸다.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이 잘못됨을 일깨워 주는 경고의 뜻인지, 눈동자만 조금 왼쪽으로 기울면 보이는 곳에 붉은 불빛이 작게 일었다. '딱정벌레 날개 짓'이였다. 순간, 토마스는 놀라 나자빠졌다. 그 바람에 욕실 창가가 흔들렸고. 더군다나 낡은 건물이기에 작은 충격에도 건물은 쉬이 요동쳤다. 그 탓에 뉴트의 몸을 적신 물방울 마저 흩뜨려 날려버렸다."거기, 누구야!" 창 너머로 뉴트의 날카로운 고함이 들렸다. 토마스는 얼굴을 구기며 옷을 털 새도 없이 냅다 골목을 빠져 나왔다. 뉴트는 창을 열어 고개를 빼꼼 내밀었고 방금 까지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듯 토마스가 엉덩방아 찍은 자리에 작게 먼지가 일었다. 뉴트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해가 뜨자마자 회의를 열어 이 시간에 제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본 파렴치한 녀석을 잡아 모가지를 따리라.고 뉴트는 생각했다.


토마스는 뒤도 안 돌아보고 한참을 달렸다. 금방이라도 뉴트가 잡아먹을 기세로 쫓아오는 것 같아 목 언저리에서 피가 나올 때 까지 뛰었다. 마음 같아서는 창피해서 미로 속으로 돌진해 차라리 그리버의 먹잇감이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몇십 분을 달렸을까. 본부에서 어느 정도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자 그제서야 뒤를 돌아봤다. 아까 나왔을 때 보았던 풍경 그대로. 당혹스러울 정도로 글레이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쥐 죽은 듯 있는 글레이드의 모든 사물들은 방금 자신이 한 짓이 무엇이었는지 절감하게 만들었다. 평화롭게 느껴만 졌던 글레이드의 침묵이 이렇게 곤혹스럽게 다가온적이 없었다. 토마스의 어깨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토마스는 방금 전에 보았던 붉은 빛을 떠올렸다. 틀림없이 딱정벌레 날개짓 이였다. 알비 말로는 글레이더를 감시하는 카메라 라고 했었다. 이윽고,자신을 이곳으로 부른자 들도 보았을 거리는 생각에 토마스는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모든걸 손놓고 망연자실하고 있을때. 농장쪽에서 곧 동틀 것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들렸다.그 소리에 정신이 든 토마스는 온몸에 뻐근한 피로를 느꼈고 내일 예정 되어있는 훈련을 하기 위해선 일단 자는 것이 우선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토마스가 본부로부터 뛰쳐나와 서너 시간정돈 잘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털레털레 해먹 들이 모여있는 숲으로 가는 것 까지 뉴트가 친히 살피며 보고 있었다는 걸 어리석은 토마스는 절대로 알 턱이 없었다.




[민호뉴트]프로포즈

 


*오류가 생겨서 다시올림 .





 우산하나를 주웠다.모두가 버스를 타고 온기마저 떠난 차가운 어느 버스정거장에서였다.철이녹슬지도 않은 그렇다고 천에 구멍이 나지도 않은,들고 다니기 창피할 만큼 디자인이 촌스럽지도 않은 검은색 배경에 파란 체크무늬가 들어간 평범한 우산이었다.뉴트의 마음에 쏙 들지 않았지만 소나기 때문에 돈 주고 사는 수고를 들이고 싶은 마음 더더욱 없었기에 뉴트는 그 우산을 들고 버스에 올라 탔다.동근 물방들이 차창에 달라붙고 바람에 흩어지고 다시 달라붙기를 반복하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뉴트는 어제 주고 받은 문자를 확인했다.


[부정하지는 말아]

[그래]

[우리가 행복했던 순간들사랑했던 순간들을 모두 기억해]

[그럴게 행복해줘 뉴트.]


차창에 달라붙은 물방울들은 물기를 머금은 우산의 곡선에서 낯선이의 바짓단 위로, 모두의 머리카락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민호는 음악듣는 것을 좋아했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항상 그의 귀에는 이어폰이 꽂여 있었다. 뉴트는 그런 모습에서 세상에 구속되지 않은 인상을 받았고,민호의 그런 모습이 좋았다. 그의 어딘가 즐거운 듯한 옆 얼굴을 가만히 지켜 보면서 뉴트의 고백은 시작되었다. 좋아해 민호. 그러면 당황하지도 않고 놀란 얼굴을 하지도 않은 채 마르고 건조한 얼굴로 이어폰을 살며시 귀에서 땐 그가 물었다. 어째서?


뉴트는 목적지에 내렸다. 물 웅덩이에 비친 제 모습을 외면한 채 거래자를 찾았다. 주머니엔 민호에게 선물 받은MP3가 있었다. 낡고 오래된 모델인 데다가, 요즘 누가 MP3를 들고 다닐까 하는 의문에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서도 올리고 나서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있던 뉴트였다. 그러나 이 모델을 찾고있었다는 쪽지를 받았고 뉴트가 제시한 가격보다 더 좋은 가격에사고자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 MP3는 민호가 무엇보다 아끼는 물건이였다.자신이 새로 알게 된 노래를 담아가지고 오면 가장 먼저 뉴트에게 들려주곤 했었다. 어때좋아? 고개를 끄덕이면 민호는 나도 좋아 뉴트. 했다 7년을 만났고 서로 사랑했지만 끝까지 같이 살자는 말을 들을 수 없을 거라 판단된 뉴트는 지친 목소리로 헤어지자고말했다.


"이거 정말 파시는 건가요?"

"네"

"잠깐만 테스트 해볼께요."


남자는 MP3를 요리조리 살펴보기에 바빴다. 가져온 이어폰으로 음악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재생버튼을 눌러보고 이것저것 버튼을 눌러댔다.

무슨 노래들어? 뉴트는 포기할 줄을 몰랐다. 아침 등굣길에서 마주치면 아침 인사를, 식사를 할 때 면 맞은 편에앉아 그가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수업을 마치고 나서 노래를 듣고 있는 민호를 향해 물으면, 민호는 쌩 하고 가버리곤 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났다. 첫 학기 중간고사가 끝날 무렵이였다. 민호는 뉴트의 반에 찾아갔다. 뉴트에게 고백하기 위해서였다. 꽤 오래 전 부터 민호 스스로 준비해온것 이였다. 그동안 뉴트에게 차갑게 대했던 것은 민호의 계획이 였던 것이다. 뉴트는 다리의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렀다. 그제야 당황한 민호는 뉴트의 뺨에 흘러내린 눈물을 황급히 닦고 입을 맞추었다.벚꽃 잎을 볼에 매단것 마냥 서로의 볼이 붉어졌다. 좋아해 뉴트. 경솔하게 보일까봐 말하지 못했어. 창문 너머 드리운 봄 햇살의 반짝임이서로를 비쳐주고 있었다. 그 빛은 영원할거라 굳게 믿은 뉴트였다.


"녹음 기능도 정상이고, 좋습니다. 여기 정확히, 구만 칠천원예요."


계절이 수도 없이 바뀌고 싸웠다 다시 화해 했다를 반복해가며 둘은 처음 느낌의 설렘이 점차 무뎌가고 있었다. 찌는듯한 무더위가 기승이였을때다. 공원벤치에 앉아 하드바를 나눠 먹으며 민호는 까맣게 그을린 팔을 뉴트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거 너줄게, 민호가 건넨 건 MP3였다. 너에게들려 주고 싶은 노래들 너가 좋아하는 노래들 다 담았어. 내가 생각날 때 마다 들어. 그 후로 열어보지 않았던 물건이였다, 민호의 손을 떠나 자신의 물건이되자 흥미를 잃어버린 뉴트였다. 뉴트는 잊고있었다, 급하고 경솔한 자신과 달리 민호는 신중하고 멀리 볼 줄 아는 사람이 였다는 것을. 그것이 7년이란 시간 동안 뉴트는 알지 못했다. 종착역을 단 하나 남기고잘못된 정거장에 내린거나 다름 없음을 뉴트는 깨달았다.


"잠시만요"

"네?"

"그거 안팔게요."


뉴트는 남자손에 들려진 MP3를 집어 냅다 뛰었다. 등 뒤로 남자의 부름이 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오던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정거장에서부터버스에 올라타기까지 쉬지 않고 달린 뉴트는 숨을 크게 헐떡였다.자신이 무슨짓을 할려고 했는지 깨닫는데에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머니에 담긴 MP3를 더욱 꽉 그러쥐었다. 달리는 동안 비가 온 것인지 머리와 옷이 흠뻑 젖어 있었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뉴트는 다시 소중한, 그가 자신에게준 MP3 재생버튼을 눌렀다. 자신과 민호가 다퉜던 날 민호가들려주던 노래, 자신이 우울하다며 민호를 붙잡고 새벽 4시까지통화하던 날 민호의 낮은 목소리로 불러주던 노래, 민호와 첫 관계를 가질 때 사방에 은은하게 퍼지던노래, 전부였다. 뉴트와 민호의 7년간의 이야기였다. 단순히 민호의 것이라 생각했던 뉴트는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재생목록에는 민호가 좋아하는 노래는 단 하나도 없었다.


-지쳐.

-뭐가?

-우리 사이.

-......

-예전에도 그랬어. 나만 좋아했지. 민호 너는?

-......

-그만할까 해.


뉴트는 울음을 터트렸다. 소나기가 내리는 초 저녁. 버스 뒷 자석 창가자리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며 민호를 생각했다.나 어떻게 해야해, 뉴트는 윗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해야해. 보고싶어. 민호,보고싶어. 뉴트는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녹음기능. 어쩌면 민호가 자신에게 줄 메세지를 녹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뉴트는재생을 멈추고 녹음파일을 찾았다. 단 하나. 일개월전 메세지가있었다. 뉴트는 주머니를 뒤져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입술을 만지작 거렸다.



***



빗줄기는 전과 달리 수그러들었다. 뉴트는 버스에서내렸다. 신발에 매달린 물 방울들이 살포시 떼었을 때, 햇살사이로 민호가 차올랐다. 민호가 서있었다. 한 손에 우산을들고 있는 채로. 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비를 맞고 다녀."


칠칠맞게. 뉴트는 민호에게 푹 안겼다. 미세한 햇살이 부셔지고 바닥에 소리 없이 퍼졌다.


"한 달뒤면 칠 주년이야"

"어?"


민호는 난데없는 뉴트의 말에 기가찬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뉴트"


민호는 그제야 뉴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곧 쑥스러운 듯 입술을 쌜죽거렸다. 뉴트는 민호의 품에안겨 발음이 다 뭉개지는것도 모

르고 울먹이면서 소리를 쥐어 짜냈다,


"내가 하고싶은말은 뉴트… 그러니까…"

"나랑 결혼해줘."


민호는 뉴트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뉴트는 참았던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들의 머리위로 무지개가 피어올랐다.비는 그쳤지만 뉴트의 울음은 그렇게 몇 분동안 그치지 않았다.

[민갤톰]소년들의 이야기


 

 

 

 

        아침 햇볕이 옹기종기 모여 이룬 해먹들을 내리쬐고 있었다. 머리맡에 돋아난 아침 이슬을 걷어내고 눈을 뜬 척은 눈을 비비고 두 세 번 감았다 떼고 나서야 눈앞에 놓인 흐릿한 형체를 알아 볼 수 있었다.

 

-뉴트 형?

 

나뭇잎을 매 만지고 있던 뉴트가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쉿, 척. 토미가 깨겠어. 그는 싱그럽게 웃으며 작은 소리로 입술을 모아 말하고 무릎을 굽혀 앉았다. 척은 '토미'라는 말에 흠칫 놀라더니 옆에 곤히 잠들어있는 토마스란 소년과 뉴트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토마스 형이 왜 아직도 여기 있지? 미로는?

-아프대. 민호가 오늘은 쉬게 냅두랬어.

 

뉴트는 토마스의 머리칼을 쓸며 말했다. 뉴트는 아까부터 근심이 가득 담긴 표정이었다. 그는 전 날 밤 알비의 상태를 확인하고 본부를 나설 때 톡 하고 차가운 물방울을 맞았다. 그리고 몇 분 뒤 하늘은 순식간에 어두워지면서 비가 쏟아져 내렸고 뉴트는 움막 아래에 우두커니 서서 미로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빗속을 헤쳐 달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괜스레 두 눈 주변이 가려웠다. 몇 시간 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돌아온 두 녀석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바닥에 뻗어 숨을 고르기 시작했고 뉴트는 그들 앞에 타월을 건네고서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런 뉴트에게 걱정 하지마, 손사래를 치며 쑥스럽게 웃었던 토마스란 녀석이 오늘 아침. 밤새 열꽃이 피어 뉴트의 애간장을 타게 만든 것이다.

 

-어제 비가 많이 왔잖아. 비 맞으면서 달렸대.

 

미련해. 뉴트는 마지막 말은 속으로 삼키고 고개를 숙였다. 척은 하품 한번 크게 하며 발등을 주물렸다. 어제 늦은 오후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마냥 비가 쏟아져 내렸다. 거친 빗줄기 때문에 본부의 천장이 그만 내려 앉고 말아, 건축팀이 애를 먹는 바람에 뉴트의 부탁으로 못과, 무거운 짐들을 오고 날라야했다. 그러다 나무판자를 무리하게 나르는 통에 엎어져 척의 발등이 볼록하게 부어올랐다. 척은 다친 발등을 살포시 들고 해먹에서 폴짝 뛰어 내려왔다. 그래도 오랜만에 토마스와 하루를 보낼 것이라는 생각에 마냥 기분이 좋은 척이였다.

 

-지금 깨우면 안돼?

-안돼.

-왜?

-그야.

 

뉴트가 입술을 만지며 골똘히 생각하는 사이 토마스가 몸을 뒤척이며 잠에서 깨었다. 자기 위로 드리워진 두 형체를 인지하기위해 눈을 찌푸렸다 뜨기를 반복했다. 괜찮아 토미? 대답 대신 토마스가 뒷목을 훑고는 괴로운 신음을 내셨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난 듯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토마스의 옷은 땀에 젖어 축축했고 그의 얼굴에는 조급해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거친 숨을 고르고 이내 한숨을 내 쉬며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제 이마를 쓰다듬던 민호의 손길, 오늘은 쉬어 토마스 라고 말하던 그의 나긋한 목소리, 딱딱한 바위 위에 허릴 숙이고 앉아 부츠 끈을 묶고 있던 그의 뒷모습은 꿈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민호는 그럼.

-민호형은 미로로 나갔지.

-민호도 비 맞았는데…

-토미, 본부로 가서 더 쉬는게 좋겠다.

 

말끝을 흐린 토마스에게 다시 되물으려다가 물어볼 타이밍을 놓친 척은 입술을 달싹였다. 뉴트는 숨을 삼켜야 했다. 홀로 몸을 풀고 있던 민호 에게 저 자식 나 걱정 하지 말고 제 몸부터 챙기라고 해. 라는 말을 듣고서 끝내 너는? 이라고 묻지 못했던 그 순간. 그가 사라진 미로의 입구를 한참이나 바라보며 들어 올린 발걸음은 너무도 무거웠던 뉴트는 아침에 제 할일을 다 끝마치지도 못하고 곧바로 토마스의 해먹 앞에 앉아 그의 옆얼굴을 이슬이 마를 때 까지 바라봤다. 뉴트는 숨을 깊게 들이쉰 다음 토마스의 등을 살며시 어루만지며 물었다.

 

-걸을 수 있겠어?

 

토마스는 뉴트의 말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고 땅을 디뎠다가 얼마 못가 휘청거렸다. 그 모습을 본 뉴트가 곧 바로 그의 한쪽 팔을 자신의 왼쪽 어깨에 둘렀고 척도 재빠르게 달려와 토마스의 팔을 들어 올렸다. 쑥스러운 미소가 토마스 입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뉴트는 본부에 재우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고 토마스는 그런 뉴트를 슬쩍 보고는 제 몸을 감싸는 뜨거운 열 때문에 눈조차 뜨기 힘들어 보이는 얼굴로 씩 웃고 말았다. 제 몸보다 훨씬 큰 몸을 지탱하고 가기엔 꽤 힘겨워 보인 척이였지만 전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티 안내고 씩씩하게 두 형들의 발걸음을 맞추기 위해 신경 쓰며 걸어가는 척이였다. 그런 녀석의 기특한 마음을 알고 있는 형들은 척이 힘들지 않게 해주기 위해 뉴트는 토마스의 몸을 자신 쪽으로 당겼고 토마스도 최대한 뉴트 쪽으로 힘을 주며 걸었다. 그런 형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없이 형들의 발만 쳐다보던 척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뉴트를 향해 물었다.

-형, 토마스 형, 오늘 정말 쉬게 놔둘 거야?

 

척의 말을 듣고 난 뒤 토마스의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뉴트가 키득키득 웃고는 톤을 높게 올려 대답했다.

 

-아니. 아프다고 봐 주는 거, 우리 스타일 아니잖아, 그렇지 척?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형.

 

그 말을 들은 토마스는 얼굴이 잔뜩 울상이 되었다. 그런 토마스를 본체만체 하며 척과 뉴트는 토마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시시덕거렸다. 이런 저런 얘기로 내내 웃으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셋은 본부 입구 까지 다다랐고, 뉴트는 토마스를 향해 말했다.

 

-5분만 기다려줄래? 토미?

 

토마스가 끄덕였고 뉴트는 2층으로 올라갔다. 몇 분 뒤 본부 입구에서 문이 열리고 뉴트가 나왔다.

 

-들어가자 토미, 잠깐 볼일이 있었어.

 

뉴트는 토마스를 부축하기위해 그의 팔을 제 쪽으로 당겼다. 토마스는 괜찮다고 사양하고 혼자 걸어 올라갔다. 척도 따라올라 갈려고 했지만 뉴트가 너는 가서 네 할 일을 하라고 하는 바람에 입술은 비죽 내밀고 축처진 어깨로 왔던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몇 발자국 떼는가 싶더니 이내 토마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토마스는 척과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토마스는 척이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생각했다. 위로 올라가면서 앞서가던 뉴트가 아무것도 생각 말고 그냥 쉬어 라고 말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2층에 올라오고 나서야 토마스는 알아차렸다. 갤리는 가장자리 침대에서 기대어 말없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곧이어 토마스는 흠칫 놀랐다. 그의 팔과 다리가 붕대로 감겨 허공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중상을 입은 듯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햇볕이 비치는 바람에 그의 주근깨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담담한 표정. 무심하게 창 밖 만 바라보고 있던 그는 바로 옆에서 기척 소리가 나는데도 단 한 번도 토마스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토마스는 뉴트가 가리킨 침대에 앉았다. 뉴트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토마스를 보고는 그의 어깨를 메 만지며 말했다.

 

-곧 제프가 주방에서 얼음을 가져 올거야. 우선 열 부터 내려 보자.

 

뉴트는 필요한거 있으면 곧 바로 자신을 찾아달라고 했다. 토마스는 고맙다고 말했고 뉴트는 그런 토마스를 향해 싱긋이 웃었다 그는 나가면서 갤리 쪽을 잠시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 건너 뉴트의 발자국 소리가 멎어지자 방안에는 완전히 갤리와 토마스. 단 둘만 남게 되었다. 긴 침묵이 그 둘을 에워쌌다. 갤리는 여전히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고 토마스는 괜스레 헛기침을 해댔다. 콜록콜록, 이번엔 잔기침을 해댔다. 필요이상으로 목을 가다듬었고 조금씩 입술을 달싹이며 가래 긁는 소리도 내보았다 그러다 정말로 가래가 나오자 황급히 뱉을 통을 찾으며 요란 이였다. 몇 번의 혓 구역질도 나왔다. 예기치 않게 큰 소란을 피운 것이 민망해 길게 누워 이제 부터는 꼼짝도 않게 다는 다짐을 하곤 눈을 감았다. 하지만 도저히 못 견디겠는지 허리를 바르게 세우고 등을 돌리지 않은 채 갤리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팔 다리는 왜 그런 거야?

-다쳤어.

 

짧고 명료한 대답. 토마스는 어쩌다가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꿈틀대었지만 간신히 참아 눌렀다. 또 다시 긴 침묵이 감돌았다. 토마스가 입안이 간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을 때쯤에 이번에 고맙게도 갤 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주 건조하고 낮은 어조였다.

 

-어제 뚫린 천장을 조금 손 보다가 나무판자들에 깔렸다.

-뭐?

 

깜짝 놀란 토마스가 갤리 쪽을 돌아본다. 토마스의 시선에 부담을 느낀 갤리는 이맛살 을 구기고 눈썹을 꿈틀거리며 뭘 쳐다보냐며 대꾸했다. 토마스는 아차 싶어 고개를 주억거리고 다시 돌아누웠다. 어디 돌부리에 걸려 크게 넘어진 줄 알았지 건물을 손보다가 사고가 난 줄을 꿈에도 몰랐던 토마스였다. 곧 연장을 챙겨들고 사다리를 오르는 갤리를 상상했다. 아무리 개념 없고 난폭하게 굴어도 그는 토마스 자신 보다 3년 더 앞서 있던 글레이더이며 건축 팀장 이였다. 갤리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토마스는 도무지 대꾸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갤리는 작업 도중에 다친 적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가지를 베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가 중심을 못 잡고 땅에 그대로 꽂아 박은적도. 망치질을 하다가 실수로 자신의 손을 내리친 적도 허다했다.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불면 꼭 하나씩 작은 문제가 일어나고는 했는데. 어제는 평소보다 강한 비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에 손볼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흩어진 판자들을 정리하고 못을 박고, 얼기설기 쌓은 나무판자를 덧대고, 박힌 돌을 무심코 빼내려다가 지탱하고 있던 나사 하나가 낡았는지 그만 엄청난 먼지바람을 일으키고 무너져 내려 그대로 깔리고 만 것이다. 팀원들이 따로 있다하지만 꽤나 위험한 일은 결단코 팀장인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갤리는 이 일을 묵묵히 3년간 해왔다. 갤리는 창밖에 시선을 거두고 고갤 돌려 토마스의 마른 등을 쓸었다. 힘없이 누워있는 그 모습에 묘한 감정이 일었다.

 

-그러는 넌 왜 여기 나자빠져 있냐? 하루 빨리 출구를 찾아야 된다, 어짼다 하더니.

 

토마스는 허를 찌르는 갤리의 질문에 기침을 하면서 힘겹게 대답했다.

 

-그게…감기에 걸렸어.

-참나, 혼자 멋있는 척 할 땐 언제고.

 

갤리가 피식 웃으며 비아냥 거렸다. 토마스는 속이 끓었지만 달리 할 말이 없어 입술을 깨물고만 있었다. 오늘 아침 갤리는 가슴께가 뻐근해 눈이 떠졌다. 다리와 팔이 밤새 쥐가 났는데 달리 도리가 없어 가만히 내비 두었더니 통증이 다리를 지나 상체로 넘어온 모양이었다. 치료 팀을 부르고 싶었지만 제프와 클린턴이 아직 자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갤리는 하는 수 없이 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 옆으로 누워 자려는 사이 창문 밖에 파란셔츠를 입은 사내가 눈에 차올랐다. 민호였다. 그는 몇 발자국을 걷더니 누군가 아래로 그를 잡아당기는 마냥 바닥으로 그냥 고꾸라졌다. 머리를 쥐어 잡고 있다가. 한참 에서야 힘겹게 일어나는 것 까지. 갤리는 숨죽이며 지켜봤다. 스트래칭을 간신히 끝낸 그는 무릎을 털고 미로의 입구로 천천히 사라졌다. 부질없어. 갤리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겼다.

 

-민호와 같이 뛰냐? 신참?

 

토마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미로를 익힐 때 까지 같이 뛰기로 했어.

 

그런데 왜? 토마스는 갤리의 입에서 민호라는 이름이 나올때 마다 저도 모르게 움츠려들었다. 처음 글레이드에 왔을 때부터 줄곧 민호에게 받은 호의가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 마냥 불편했다. 민호는 글레이더들 사이에서 다가가기 쉬운 인물은 아니었으며 일개 신참이 그에게 주목을 받은 것이 속으로 꽤나 부담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이유의 중심에는 갤리가 있었다. -굳이 갤리가 아니어도, 단 숨에 러너 팀장인 민호의 눈에 든 토마스를 싫어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민호와 갤리는 토마스가 모르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갤리가 자신을 미워하는 이유도 민호 때문이라고. 짐작하고 있는 토마스였다. 하지만 언제나 험악한 표정으로 쏘아보는 갤리의 눈초리에 잔뜩 기죽어 있었다가도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자신을 싫어하는 거라 생각하니 심술이 났다. 토마스는 며 칠 전 부터 갤리의 근처를 서성이면서 갤리가 속한 무리의 대화를 엿들었다. 가끔 그들 앞에서 조곤조곤 다정하게 말하는 갤리. 자신에게 볼 수 없었던 미소와 장난 끼 가득한 얼굴로 일관하는 그를 보고 늘 가슴이 늘 근질거렸던 토마스였다. 한 번은 갤리에게 자신을 미워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던 적이 있다. 대답을 듣고 나자, 대꾸 할 수 없었던 그 날을 뒤로. 더 이상 가까워 질 수가 없는 벽이 둘 사이에 가로 막은 것 같았다. 민호도 마찬가지였지만, 진정으로 자신 그대로 인정받고 싶은 건 민호가 아닌 갤리였다. 토마스는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갤리가 자신을 따라 와 주길 바랐고 그렇기 되기까지 토마스 자신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쪽이었다.

토마스의 물음에 갤리는 대답 없이 콧김을 내시고 시선을 다시 창밖에 두었다. 돌아선 고개는 대화의 마침표를 찍었다. 갤리는 몇 분 뒤 조금은 가라앉고 조금은 힘 빠진 목소리로, 처음 그가 누워있던 그를 보았을 때 느낌 그대로, 담담한 얼굴로, 나직이 물었다.

 

-걔가 말 안하디?

-뭘?

 

갤리는 한손을 들어 이마께에 올려놓았다. 말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새끼손가락을 건넨 뉴트의 손목이 가냘프게 떨렸다. 몸은 좀 어때? 하며 문을 열고 들어온 그는 사람 좋게 웃으며 다가왔다. 갤리는 그를 보다가 이내 시선이 다리에 멈추자 죄지은 마냥 고개를 돌렸다. 어쩐 일이야. 뉴트는 대답하지 않고 옆에 놓여 진 간이 의자를 빼내어 앉았다. 나비가 꽃에 앉는 것처럼 작고 가녀린 몸짓 같았다. 그는 엷게 미소를 띄우더니 이내 천천히 거뒀다. 토마스가 아파. 감기가 심하게 걸린 모양인데. 그는 말끝을 흐렸다. 곧이어 괜찮지? 라고 물었다. 뉴트는 대답 없는 갤리를 향해 몸을 앞으로 빼고는 손을 비벼대며 웃었다. 말 하지마. 그 앤 아직 몰라. 고개 돌려 바라본 뉴트의 눈은 몇 초 간 반짝이며 아른거렸다. 그 눈은 갤리는 지켜주고 싶은 사람을 생각할 때의 눈이라 여겼다. 검푸른 하늘이 글레이드르를 집어삼킨 그날 저녁. 때마침 본부에서 소변을 보고 나오던 참이 였다. 알비와 뉴트가 사뭇 심각한 얼굴을 하고 나란히 숲속으로 걸어가는 걸 보고 수상 찍어서 그 둘을 밟았었다. 주변은 각자의 발걸음 소리 밖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쥐죽은 듯 조용했다. 갤리는 몇 발걸음 떼고 나서 곧 바로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그 둘은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제작실 안으로 들어갔다. 곧 이어 거친 고함소리. 테이블을 내리치는 소리, 쨍그랑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는 소리가 들렸다. 갤리는 숨을 참고 제작실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더욱 귀를 기울었다. 출구는 없어. 다른 애들한테 비밀로 해. 귀에 박힌 그 말을 끝으로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뒤엉켜 관통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순간 갤리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제법 크게 나온 바람에 갤리는 당혹스러움을 감 출 새도 없이, 인기척을 들은 민호가 제작실에서 뛰쳐나왔다. 갤리는 달아나려고 했지만 곧 바로 갤리의 어깨를 붙잡은 민호가 그를 집어 삼킬듯 할 기세로 숲속으로 끌고 갔다. 어디까지 들었어. 민호의 숨이 불규칙적으로 요동치면서 온 몸이 파르르 떨렸다. 속으로 울음을 삼킨 목소리가. 고요한 숲속을 처량하게 울렸다. 어디까지 들었냐고. 민호의 손아귀에 더욱더 힘이 들어갔다 갤리는 소리를 짜내어 말했다. 다. 전부 다. 민호는 끙 소리를 내고 주먹을 나무 기둥에 쳐 박았다. 숨을 내쉬고 쥐어짜낸 목소리에서 벤의 이름이 세어 나왔다. 벤. 벤에게는 절대 말하지마. 그다음 갤리의 어깨를 붙잡고 애원한 그의 눈동자가 그랬다. 처절하지 못해 숨 막혔다. 그리고 그대로 갤리의 목덜미에 파묻혀 우는 것 이였다. 숨이 넘어 갈 정도로 울어 젖히는 그 앞에서 갤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향해 유리 조각이 박혀 반짝이던 눈동자. 허나 자신을 보고 있지만 벤이라는 아이를 향해 비추던 눈동자를 보고만 갤리는 멍청하게 서서 그의 울음소리를 들어주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됐다. 그만 두……

-알아.

 

갤리는 흠칫 놀라 몸을 일으켰다.

 

-안다고?

 

토마스는 잠자리에 들 참 인지 이불을 정리하고 있었다. 덤덤하게 절제 있는 그의 몸짓이 다음에 나올 말들은 모두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민호 그 자식 똑똑한 줄 알았더니 제대로 돌았구만.

 

갤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토마스가 듣던 말던 상관없이 중얼거리면서. 참다못한 토마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똑바로 갤리를 향해 말했다

 

-민호에게 약속 했어. 모두를 나가게 해주겠다고.

 

부질없는 약속. 갤리는 미간을 구겼다. 토마스 입에서 나온 그의 이름이 불쾌한 갤리였다.

 

-출구가 없어도, 찾는 방법이 반드시 있을거야.

-우린 나갈 수 없어.

 

갤리가 콧방귀를 끼고는 곧바로 받아쳤다. 토마스는 소리쳤다.

 

-나갈 수 있대도!

-나갈 수 없어! 젠장. 너는 뭐가 그리 잘나서 그렇게 확신하는데?

 

토마스는 굵은 침을 삼켰다. 분명, 그렇게 다짐했다. 어스름한 새벽빛이 수평선부터 찬찬히 채우고 있을 때, 토마스는 차가운 바닥에 아무렇게 누워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고, 민호는 벽에 기대어 땀을 닦고 있었다. 그의 땀이 단정한 콧날을 타고 흘러내렸다. 거뭇거뭇한 얼룩이 묻어난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토마스는 보았다. 그는 웃음을 터트려 실컷 웃어젖히다가 이내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웃다 울었다가 하는 꼴이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다. 토마스는 도저히 그에게 다가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모두를 부탁해. 한참을 흐느낀 민호가 일그러진 목소리로 토마스를 향해 내 뱉은 말이었다. 토마스는 그 말을 속으로 삼키고 또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내의 인생이 한꺼번에 폭풍처럼 불어 젖힌 순간을 목격한 그 날. 토마스는 다짐했다. 나가겠다고. 반드시 나가고 말거라고.

 

 

-나갈 수...있..!

 

그 순간. 토머스의 곧은 몸집이 그대로 아래로 곤두 박칠 쳐댔다. 토마스는 망치로 두 어 번 내리치는 통증이 머리를 뚫고 지나가는 듯 했다. 두통이 멎기도 전에 전보다 더욱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 열꽃이 온몸을 잠식하는 것 같았다. 들끓는 열을 때문에 숨조차 쉬기 어려워진 토마스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몸이 경련이 일어난 듯 격정적으로 떨었다.

 

-야 신참!

 

토마스의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 갤리가 한손으로 급하게 다른 한손을 감싼 붕대를 푸르고, 발에 감긴 천을 끊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기둥에 세워둔 목발을 집고 절뚝절뚝 다가가 토마스의 동공 맥박을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게거품 까지 무는 토마스의 모습에 기겁한 갤리는 문밖을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치료팀! 클린턴 제프! 빌어먹을, 아무나 좀 와봐!

-갤리!

 

토마스가 숨을 토해내듯 갤리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고 나서 힘겹게 손을 뻗어 갤리의 손을 잡았다. 잡은 손에서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불처럼 미세한 힘이 느껴졌다. 불안한 듯 떨고 있는 갤리와 달리 토마스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그는 눈이 반쯤 풀려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빛은 혼탁하지 않고 오히려 뚜렷했다. 갤리를 똑바로 응시한 토마스가 엷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네게도 약속할게.

-뭐?

-내가 미운 이유. 나 때문에 모든 게 뒤틀려서 그렇다고 했지?

-그만 입 다물어. 너 지금 말하면.

-그럼 이거 하나만 묻자.

 

 

토마스는 곧 끊어질 것 같은 호흡을 바로 잡으며 갤리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갤리는 토마스의 얼굴은 찬찬히 쓸었다. 아주 미약하고 뜨거운 숨이 가슴을 타오르면서 그의 입은 느릿하면서도 다급 하게 열렸다.

 

-내가 맞다면. 결국에 내가 맞다면, 그때 가면 나도…

갤리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말을 다 끝내지 못한 채 토마스의 눈이 감겼다. 바로 그때, 문이 열어 닫치고 제프와 클린턴이 뛰어 들어왔다. 그 뒤로 뉴트도 따라 들어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뉴트가 걱정스런 눈으로 갤리를 향해 물었다. 게거품을 물고 뻗어있는 토마스를 보며 뉴트는 입을 가리고 무릎이 꺾인 채 다시 되 묻지만 갤리는 들을 수 없었다.

 

- ……

 

 

그때 가면 나도 좋아해줄래? 민호는 대답이 없었다. 차마 고개를 들어 볼 수 없었음에 그가 어떤 얼굴인지 알지 못했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당황한 기색이라도 보였으면 좋았을려만, 혐오로 일그러진 얼굴이면 좋았을려만, 바로 그 자리서 제 멱살을 잡고 거친 욕설을 내뱉고 두 발로 짓밟았으면 좋았을려만. 허나, 그의 얼굴은 표정하나 없이 평온했다. 민호는 등을 돌려 고개를 제 쪽으로 슬며시 돌리고 나직이 말했다. 언제나 매일같이 보고 싶었던 그 등이었다. 하지만 그 염원조차 자신에겐 죄가 되기에 언제나 갤리에게 아픈 등이었다. 자신을 등 돌린 채 드리워진 그림자가 곧 저를 집어 삼킬 듯이 부풀어 제 심장을 짓눌렀던 그날의 공기. 오늘날, 갤리는 또 다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없어. 너를 좋아할 일은 절대로 없어.

 

 

그 말을 끝으로 민호는 미로로 돌아갔다. 언젠가 매일 바라 볼 것이라 꿈꿨던 그의 등을 뒤로한 채로 빠르게 사라졌다.

 

 

 

 

[스코치 트라이얼] 예고편








ㅠㅠㅠㅠㅠ아 진짜설레 

호ㅜ아후아 후아ㅣ


잘빠졌다 영화..ㅜㅜㅜㅜㅜㅜㅜ

아오랜만에 기헝이 얼굴보니까 왜이렇게 좋은지

아 딜런아 딜런아 너왜이렇게 잘생겨졌니

ㅜㅜㅜㅜㅜ

아토브생 목소리가 날 또 치네요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닥치고 찬양하자 !!!!! 웨스볼!!웨스볼 !!오오!! 웨스볼!!!!



아 진짜 예고편만 봤을때

책 보고 상상했던 것들이 백퍼까진 아니더라도 80퍼정도 일치해서 소름ㅠㅠ 

. 쥐선생도 괜찮고 ㅠㅠㅠㅠㅠㅠ호르헤ㅠㅠㅠ 아진짜ㅠㅠㅠ흑ㅠㅠㅠㅠㅠㅠ

얼마나 기다렸는데 ㅠㅠㅠㅠㅠ흑 ㅠㅠㅠㅠ스코치 원작은 메이즈러너 시리즈중  진짜 씹노잼이지만 웨스볼을 믿기에 

통장잔고장전해놓을께 ㅠㅠㅠ 

9월 18일 빨리와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민톰] 위키드 연구원 k의 일기

 *데스큐어 스포 왕왕 있습니다*




4월 14일


쉬이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정신으로 이 일기를 쓴다. 그때 당시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라도 그때를 기억하면 등줄기가 오싹해지고 만다. 나는 위키드 심리학 팀 소속으로 시험 대상자들로 청사진을 구축하기위해 위키드 에서 어언 5년간을 함께해왔다. 팀은 미로 시련부터 다양한 감정과 반응 그리고 생각의 패턴들을 연구해왔다. 지금으로부터 3 주전. 시련 2단계인 초열지역을 통과한 실험대상자들을 데리고 곧 바로 시련 3을 진행하기로 했다. 절차는 단순했다. 우리는 각 팀별로 한 명을 맡아 30일 동안 관찰해 뇌의 변화를 젠슨 부총장에게 보고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우리가 맡은 실험체는 코드네임 가 그룹, 넘버 7.'대장' 민호였다. 그는 시련1 '미로'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었던 실험체라서 나또한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다. 우린 다른 면역인들 보다 현저히 높게 나타나는 그의 용맹함을 심도 있게 알아 보기위해 그의 뇌에 자극이 될 만한 시도를 계획했다.

 우리는 환각제를 사용해 그의 눈앞에 미로에 있을 때의 고통과 끔찍했던 순간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주게 한 다음 토머스를 원망하도록 환각을 보이게 했다. 토마스는 죽음을 당해야 마땅한 인물이며 그는 모두를 배반할 인물이라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우린 이런 식으로 3 주 동안 지속적으로 그에게 약물을 투여했고 그에 따른 변화를 관찰했다. 이 방법이 효과가 없으면 우린 최후의 방법을 진행해야 한다. 그의 뇌에 삽입된 칩을 이용해 조종을 하는 것 이였다. 안타깝게도 3주 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우린 하릴없이 토머스가 있는 위치를 알려주며 지금 즉시 죽이라고 명령을 하기로 했다. 실험은 순조롭게 진행 될 줄 알았다. 그 날 나는 부총장님께 한 주의 결과를 보고 하기 위해 본부실로 올라가고 있었다. 말단 직원 하나가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큰일 났다며 다급히 날 찾았다. 그는 민호에게 큰 일이 생겼다고 전했다. 나는 곧 바로 실험실로 내려갔다. 그 자리에서 숨이 멎을 뻔 했다. 바닥은 피로 흥건 했고, 민호는 도저히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듯이 우두커니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있었다. 모든 게 엉망 이였다.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되었으며 푸른 셔츠는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나는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냐고 다그쳤다. 하지만 불침번을 선자가 말하길. 불과 10분 만에 일어난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가 허리를 천천히 일으키더니 카메라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고 나지막이 웃었다고 한다. 이내 이 괴물은-불침번을 선자의 말에 따르면 실로 괴물이라 하였다.- 허리춤에 있던 단도를 꺼내들어 제 허벅지를 단숨에 찌르기 시작하였고 조금의 고민도 없던 행동 이였다며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전했다. 명령의 강도가 조 금 더 거세질수록 이번엔 자신의 손을 베고 복부를 차례차례 찔렀다. 명령에 불복종 하기위해 자신의 몸을 사정없이 질렀다니. 나는 즉시 녹화영상을 보여 달라고 했고 녹화된 화면에선 불침자의 증언이 한 치의 과장도 거짓도 없이 모든 게 재생되고 있었다. 토마스를 죽이라는 의문의 소리에 아이는 격렬하게 몸을 꿈틀 이며 요동쳤고. 으.으,으아…! 눈이 뒤집어지고 천장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질렀으며 단도로 제 몸의 살이 패이고 곪을 정도까지 깊숙이 찌르고 있었다. 하얀 방이 피로 시뻘겋게 물드는 시간까지 불과 10분채 되지 않았다. 나는 문을 열어 상태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그 자가 막아서며 난처한 얼굴을 하곤 말끝을 흐렸다. 「박사님 저 안은 들어가지 않으시는 게……」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그 자를 뒤로한 채, 침착하게 문을 열었다. 경악 할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자마자 코를 자극하는 피 비린내가 진동해 숨도 못 쉴 지경 이였다.

그의 셔츠는 피가 흥건히 묻어있었고 피 범벅이 된 그의 몸이 시체마냥 굳어 있었다. 바닥은 피로 흥건했다. 죽은 줄 알고 다가가 그의 셔츠 깃을 잡는 순간 그의 험악한 손이 내 팔을 낚아채 꺾었다. 아직도 그런 힘이 있는 것인지 면역인은 참으로 기이하다. 나는 하마터면 뒤로 자빠질 뻔했다. 그는 정신이 아득한 상태라 반쯤 잠긴 눈 이였지만 올라간 두 눈매 덕에 충분히 매서운 눈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의 얼굴은 산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토..토머스… 」 그의 부르튼 입술 사이에서 뜨거운 숨과 함께 터져 나온 말이었다. 또 한 번 그가 힘겹게 입을 벌렸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경멸과 경이의 눈동자로 다음 나올 말을 기다렸다.「그 녀석 에게 털 끝 하나 라도 손대었다간….죽여버리겠어」

 쿵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머리가 고꾸라졌다. 내 가운은 물론, 사방에 피가 퉈었다. 나는 손짓해 살아있으니 지금 당장 의무 팀으로 옮겨 지혈을 하라 지시했다.

 

 실험은 중지 되었지만 실험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 이였다. 하지만 별개로 나는 구토와 어지럼증에 당분간 긴 휴식을 취해야했다. 당장이라도 옷을 벗고 중단 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그룹 넘버 세븐 대장 민호는 나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얼룩진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아까 부터 들렸던 폭발음이 등 뒤에서 울릴 만큼 한껏 가까워졌다. 곧 이 건물은 흔적도 없이 무너질 것이며 수년간 연구한 모든 자료들은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의 연구는 희망의 불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결국 재가 되어 흩어지겠지만, 나는 그날 내 두 눈으로 목도하였다. 그들이 후에 꽃피울 희망의 꽃을 말이다. 내 팔을 휘 감았던 그의 손. 아직도 뜨겁다. 위키드는 선하다.

[민호뉴트 ] 가끔은 네가 미치도록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본부 안에 모여 앉은 글레이더들은 신참, 토마스의 잘못을 두고 열띤 의견을 놓고 있었다. 그중 갤리는 얼굴까지 붉혀가며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모두들 그의 말에 집중 하고는 있지만 계속 반복되는 그의 의견에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기둥에 몸을 기댄 채 서 있던 뉴트는 오늘날, 모두를 본부로 모이게 만든 토마스란 소년에게 온 신경을 맞춘 터라 갤리가 무슨 말을 떠들어 대는지 그의 귀에선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뉴트는 오늘 하루 종일 토마스를 생각했다. 난처한 얼굴로 다소 긴장한 듯 보이는 저 토마스라는 소년이 이정도로 이목을 끌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러너가 되지 않는 이상, 이 곳 에서 오랫동안 민호와의 접점이 없을 것이라 생각해 안심하고 있던 뉴트였다. 그런데,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고 저 자신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날 이후 뉴트는 속이 뒤틀린 듯 기분이 불쾌했다. 그래 이 감정은 '질투' 그리고 '원망'이였다. 뉴트는 자신은 이룰 수 없는 꿈에 너무나 쉽게 다다른 토마스를 질투하고, 그날 민호 곁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토마스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원망하고 있었다. 뉴트는 생각 끝에 민호를 바라봤다. 얼기설기 쌓은 지푸라기사이로 햇살이 드리우진 바람에 민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토마스는 우리가 목숨같이 소중히 해온 룰을 한 번에 깨뜨렸다고. 이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야?"

 

갤리의 핵심을 찌르는 말에 잠자코 듣고 있던 아이들이 술렁인다. 그러나 뉴트에게는 토마스가 글레이드의 룰을 깨뜨리건 말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뉴트는 처음과 그대로 여전히 민호를 보고 있었다. 그깟 룰이 뭐라고. 룰을 어길까봐, 민호를 구하지 못했다. 룰을 어기는 것이 되기에 민호의 절규에 찬 비명을 못들은 체 할 수밖에 없었다. 후회가 반복되자 결국 자기혐오로 미쳤고 뉴트는 애들의 목소리로 부터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을 애들로부터 수 백 마일 떨어진 곳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 곳에 민호가 그려졌다. 단 둘만 있는 공간, 자신이 유일하게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  묻고 싶은 게 있어. 머리가 뜨거워질수록 냉정을 찾는 뉴트였다. 뉴트는 눈을 한번 깜박이고 평소와 같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민호. 그 한사람을 여전히 바라봤다. 하지만 치켜뜬 눈은 손에 든 핀을 목표점에 정확히 맞히겠다는 사수의 눈 이였다.     

 

"민호"

 

술렁이던 아이들이 일순간 뉴트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방금 전까지 뜨거웠던 열기는 사라지고  그 둘만의 공기로 채워지는 듯 했다. 순식간에 관객이 된 아이들은 연극의 결말을 숨죽이며 지켜보듯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네 생각은 어때? 어젯밤에 둘이 같이 있었잖아"  

 

핀은 허공을 긋고 날아가 날카롭게 다트 판에 꽂혔다.,민호는 그제서야  뉴트가 방금 전 까지 자신을 보고 있었단 사실을 알아차렸다. 갤리와 아이들은 민호가 러너들을 이끄는 리더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뿐 뉴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별 개의치 않았지만 민호에겐 예외였다. 순간, 헛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참았다. 문득, 미로에 갇히기 전날 졸린 눈 비집고 일어나 자신과 알비를 배웅해주었던 뉴트가 생각났다. 그 전에도 가끔 평소와 다르게 자신을 대할 때가 있었지만 기분 탓이라 넘겼던 민호다. 하지만 오늘 미로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이건 남들보다 멀리 봐야 하는 치프러너라도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역시나, 그거였나. 민호는 숨을 고르고 자신에게 꽂힌 새까만 눈동자를 지나쳐 토마스에게 시선을 둔 채로 아주 천천히 말했다. 

 

"우리에겐 토마스 같은 애가 필요해." 

 

여전히 뉴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담담했다. 민호도 더욱 오기가 생겼다. 

 

"토마스를 러너로 만들자."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조금 전 보다 더욱이 소란스러워졌다. 민호의 말에 당황한 갤리가 전보다 더욱 흥분한 얼굴로 앞으로 나갔다. 목에 더욱 힘을 주어서 그의 목에 핏대가 살짝 올라왔다.  

 

"내가 3년 동안 있으면서 미로에 대해 잘 아는…"  

 

바로그때였다.

 

위이이잉-위-이이잉 -

 

온 신경을 찌르는 이 경보음은 본부 밖에서 나는 소리였다. 글레이더라면 누구나 알듯이 그 소리는 지금 이 시기에 들리면 안 되는 소리였다. 낌새가 심상치 않다는 걸 짐작한 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본부를 빠져나와 컨테니어가 올라오는 공터로 뛰쳐나갔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본부에서 뉴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민호에게 던지는 다소 비아냥거리는 투였다.

 

"잘했어" 

민호가 어이없다는 식으로 맞받아쳤다.

"진심이야?"

"치프러너 눈이 좀 높아?"

 

뉴트는 날카롭게 대꾸하고 아이들의 뒤를 따라 나설려 했지만 민호가 다급히 그의 손목을 잡았다. 

"잠깐, 얘기 좀 하지?"

 

할 말이 있는데. 앞서 가던 토마스가 뒤를 돌아보며 민호 에게 나오라고 손짓하였다. 뉴트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했다. 민호가 대충 알겠다는 시늉을 하고 말을 이을 찰나에 뉴트가 민호의 손을 뿌리쳤다. 짧게해, 뉴트의 퉁명스러운 태도에 민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내 손을 잡는 걸 포기하고 자신의 숄더벨트를  움켜줬다.

 

"그니깐 우린."

 

민호가 입을열자 뉴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민호는 그런 뉴트를 보고 민호는 숨을 들이키고 힘을 주어 말했다. 

 

"어젯밤 아무일도 없었어, ."

 

뉴트는 민호의 말을 다 듣지도 않은 채, 뒤를 돌아 말했다. 

 

"들을 거 없어 지금당장 가 봐야해"

"야"

 

참다못한 민호가 이번엔 뉴트의 어깨를 세게 돌려세웠다. 손목시계를 보며 말을 이었다. 

 

"30분 정도는 시간 있어. 얘기 좀 해."

 

잔뜩 구겨진 얼굴. 땅으로 내려 꺼진 시선, 민호는 고개를 내리고 뉴트의 시선이 닿은 곳에 무릎을 굽혀가며 간절하게 물었다. 

 

"도대체 왜그러는거야. 너 답지않게."

"......."

 

확실히 민호가 3년간 지켜봐온 '뉴트다운' 행동은 아니었다. 글레이드 안에서 뉴트의 존재는 글레이더들을 자신의 몫은 물론 남의 몫까지 신경 쓰며 주어진 상황 속에 최선의 방책이 무엇인지 아는 감각이 있었다. 알비는 물론 민호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이 그런 뉴트를 신뢰하고 따르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하지만 민호가 다시 글레이드로 돌아오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앞에 있는 이 소년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민호의 입장에서 돌이켜 봤을 때 항상 자신이 뉴트를 난처하게 만들었지 그 반대의 상황은 단 한 번도 오지 않았기에 민호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너 이거 질투 맞지?"

"미친새끼"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뉴트가 금방이라도 죽일 기세로 눈을 치켜떴다. 민호는 그마저도 귀엽다고 느꼈다.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그의 반응에 점차 확신이 들자 들뜬 민호는 눈부신 햇살 때문에 상기된 제 얼굴이 가려진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뉴트가 질투라니,  만약 알비 몸이 성해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난데없는 파티를 벌였을지도 모른다고 민호는 생각했다. 항상 자기혼자 뉴트를 좋아하는 거라 믿고 있었다. 뉴트가 다른 친구들에게 대하듯 저에게도 그런지라 자신을 헷갈리게 만든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냥 신기했다. 뉴트의 이런 행동이. 

 

" 야 그럼 이거 하나만 물어보자. 너 내가 살아돌아왔는데 안 반갑냐??" 

"하나도"

 

당연, 거짓말이었다. 뉴트는 언제나 민호가 미로를 나설 때마다 가슴에 죄어지는 감정에 걷잡을 수 없었다. 그깟 룰이 도대체 뭐 길래. 뉴트가 떠오른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봐도 아찔했다. 민호가 그리버에 찔린 알비를 등쳐 업고 올 줄 을 그 누가 상상을 했으랴. 문이 닫히면서 녀석이 괴로운 모습을 보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이건 룰에 어긋나. 망할 룰 때문에 제 연인이 위혐에 처한 상황이 닥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토마스는 룰을 어겼지만 미로 안에서 살아 돌아왔다. 룰을 어겨도, 다른 방법이 있었다는 걸 왜 자각하지 못했을까. 이토록 한심한 자신이 민호 얼굴을 쳐다보지 못할뿐더러 자신보다 신참인 토마스라는 소년이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뉴트는 이 복잡한 심정을 애꿎은 민호에게 토로하는 것이 였다. 왜 러너들만 미로를 달리냐는 토마스의 물음에 그들은 우리보다 빠르고 강하니까 라는 구역질나는 말밖에 할 수 밖에 없는 자신 또한 원망스러웠다. 민호가 알비를 지탱하고 들어오던 순간이 역력해서 뉴트는 그때만 기억하면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고 싶어졌다. 점점 두 다리를 지탱할 기력이 떨어지자 아까와 비슷한 기둥을 찾았지만, 너무도 멀리 있었다. 차라리 뉴트는 민호의 화를 더 돋구어, 어서 욕한바가지를 하고 돌아서 나가길 바랐다. 이런 뉴트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음 민호의 행동은 뜻 밖 이였다.

 

"야,이 등신아. "

 

한껏 가시가 선 그의 욕지거리에 뉴트가 이제 됐다 싶어 안도하던 찰나에, 민호가 뉴트의 어깨를 제 쪽으로 부드럽게 당겼다. 뉴트는 민호가 나가면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을 준비를 하고 있던지라, 무방비 상태로 기우는 제 몸을 감당할 도리 없이 저도 모르게 민호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이렇게 떨고있는데 무슨." 

 

민호는 떨고 있는 여린 어깨를 살포시 감싸 쥐었다. 도저히 설 힘이 없어 기둥에 기대고 있었다는 것을. 민호는 눈치 채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한 숨도 못 잤을 뉴트가 생각나니 미안해졌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혼자 남겨질까봐, 혼자만 알고 있는 사실을 떠 안고 갈까봐 얼마나 힘들었니. 민호의 이런 걱정 어린 마음이 뉴트를 다독이는 손에 담아 전해졌다. 뉴트는 눈을 감았다. 울지 않기 위해 감은 눈을 더욱 질끈 감아야했다. 

 

 

"살아야했어. 나마저 없으면 너 혼자 책임져야하잕아....혼자 남게될 너가 생각나서 그 하룻밤이 마치 일년 같았어"

 

자의든 타의든 글레이드에 살게 된 소년들에겐 말 못 할 속사정이 있다. 글레이드에 첫 소년이 온 기점으로 부터 3년이 흐른 지금.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너나 할것 없이 삽부터 들어야 했던 시간, 수 천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지금의 룰이 만들어질 때까지 알비, 뉴트 민호를 포함한 초기 글레이더들은  수 리터의 피와 땀을 흘려야 만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빈 공터에서 유일하게 아는 것은 이름뿐인 그들에게 의지할 것이라고는 자신과 같은 또래인 소년들이기에 그들은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욱 진하게 살았다. 다음에 줄줄이 들어오는 소년들에게 자신들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일러주며 함께 헤쳐 나갈 일원으로 만들면서 그들에겐 각자의 어깨에 자연스레 책임감과 동시에 부담감이 올려졌다. 다른 아이들은 모르는 또 다른 진실도 그들의 어깨를 더욱이 무겁게 짓눌렀다.

 

"야, 이런데도 내가 아직도 의심스러워?"

 

뉴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대답에 퍽 안심이 된 민호가 이번에는 아까 못 잡은 손을 다시 잡을려다가 갑자기 날아오는 뉴트의 주먹에 명치를 세게 맞고는 우스꽝스럽게 나자빠졌다.

 

"아악 갑자기 왜 때리는 거야. 뉴트 "

"방금 건, 치프러너씩이나 되서 알비를 지키지 못한 벌이고 "

 

민호가 욱신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못 일어나고 있었다.  제 감정을 민호에게 들킨것이 창피하고 어울리지 않게 멋있는척하는 민호도 보고 싫었던 뉴트는 폭력을 행세해서 제 연인의 나쁜 버릇 좀 고쳐주겠다 다짐해 또 다시 주먹을 들었다. 

 

"이건 나를 기다리게 한 벌이야 "

"아아악"

"그리고…"

 

민호는 또 다시 날아오는 뉴트의 주먹이 두려워 숨을 들이 키고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뉴트는 자신의 마지막 기력을 민호를 벌주는 데에 쓴 터라 쓰러지고 말았고. 민호가 놀란 눈을 하며 뉴트에게 다가가자 뉴트는 이때다 싶어 민호의 허벅지를 디디고 놀라 벙 쪄 반쯤 벌어진 그 입술사이로 제 입술을 대었다. 이내 달콤한 소리와 함께 떨어진 서로의 고개가 등을지고 획 돌아섰다. 두 소년은 볼이 발그레 진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분 뒤 제가 벌인 상황 후에 들이닥친 침묵이 민망한 뉴트가 제 입술과 주먹을 내보이며 그런다. 

 

"죽었으면 이게 아니라, 이거였을 텐데…"

 

그렇게 자신을 노려보는 뉴트가 귀여워 민호는 연신 웃음을 터뜨린 뒤 뉴트를 힘껏 껴안았다.  

 

"이거 놔!"

"싫다면."

 

뉴트가 젖 먹던 힘까지 민호를 밀어내는 데에 써도 제 아무리 매일 하루 반나절을 방대한 미로를 휘저어 생긴 민호의 품을 벗어나기엔 턱없이 무리였다. 제 품에 껴안고는 민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 계속 이러고 있자" 

 

품안에서 연거푸 휘젓던 뉴트도 힘이 그세 풀렸는지, 기댄 민호의 품이 썩 나쁘지 않았는지. 그만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마른 나뭇가지와 낡은 천으로 덕지덕지 붙어놓은 목조건물에 그리 방음이 잘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이 둘에게 이 순간 만큼은 본부 밖에서 벌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서로의 숨소리만 들릴 뿐이였다.

 

-

 

 

 

뒤늦게 본부를 나선 그들은 앞으로 닥칠 상황에 대해 아무런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사랑하는 너를 껴안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들은 영원히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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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뉴트]우심뽀까



스코치트라이얼 스포 有

 

 

 

 

 

 

 

 벽에 기대어 하나같이 멀건 눈동자로 허공을 보고있는 아이들 사이를 지나쳐 비틀비틀 걸어 나왔다. 오늘로 정확히 며칠째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손목시계에 적힌 시간이 우리가 그래도 살아있다고 말해주는것같았다. 나는 적당한 자리에 기대어 화장실에서 퍼온 물을 마셨다 근처에 버려진 봉지를 주워 담은 물이였다.이렇게라도 해야지 안그러면 물 마실 기력도 없어 바닥에 납작 엎드릴것만 같았다. 숙소에 있는 아이들도 말 한마디 없이 입을 뻐끔뻐끔 거리며 허기진 배를 잡고있을 뿐이였다. 물론, 한 놈만 빼고 


"나도"

척 하니 저도 물을 달라며 손을 내미는 그에게 나는 신경질적으로 봉지를 건넸다. 

"크.아,죽겠다.."

나는 봉지를 다시 건네봤고 입안에 물을 가득 담아 오물거렸다. 음식물이 입 씹듯이 먹는 시늉을 하면 조금이라도 나을것 같아서다. 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수록 속은 더욱 쓰라렸다. 바짝 마른 입안을 둥글게 말아 침을 삼키고 있는데 민호가 퉁명스럽게 불렀다. 이 자식 아직 안갔었나.

"야"
"왜"
"토머스는?"
"자던데"
"잔다고?"

등뒤에서 민호가 벌떡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저 자식은 아직도 저렇게 즉각 일어날 힘이 있는건가.
민호의 타고난 괴물체력이 그저 경이로울 뿐이였다. 나는 말 할 힘도 없는데. 이 자식이 더 질문 할까봐 아까 오면서 숙소 침대에 자고 있는걸 봤고 그가 트리샤 때문에 힘들어 하는같다는 설명을 덧붙혔다. 그러자 민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누웠다. 몇 분간 침묵이 있었고 다시 민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전과는 다르게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우리 여기서 얼마나 더 버틸것 같나?"

버티다.우리는 그동안 생존하기위해 필사적으로 지내왔었다. 글레이드에서의 생활은 수십년전에 있었던 일같은데,불과 며칠 밤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니 새삼 믿을 수 없어서 허탈했다. 나는 이제 생각하는것을 그만하기로 했다.더이상 생존을 위해 싸우는건 진절머리가 난다.나는 별 생각을 안하고 대강 대답했다.


"글쎄,굶어 죽기 직전에 구해주지 않을까."


나는 그만 물어 똘추야 라고 말한 뒤 허벅지를 때릴려던걸 이내 손을 뻗기가 힘들어 쉬이 포기하고 누웠다. 게다가 민호의 허벅지는 쇠덩이 만큼이나 단단해서 잘못하다간 뼈가 나갈 수 있다는걸 간과해서는 안되었다네 말이 맞다 뉴트. 민호가 바람빠진 소리를 내면서 대꾸했다.어째, 굶어서 그런건지 몰라도 민호의 숨소리가 가느다란 실같이 옅었다. 


"아씨, 졸라 배고프다.."

나는 정말 더이상 말할 기운이 없어서 민호의 쓰잘때기없는 푸념을 모른체하고 입술을 깨물었다.바짝 말라 비틀어진게 프라이펜이 해줬던 노릇한 기름에 달궈진 베이컨이 생각났다. 나는 꿈속에서라도 만찬을 즐기기위해 최대한 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사방은 조용했고 시계 소리가 규칙적으로 째깍이자 눈꺼플이 살며시 감기면서 잠에 빠져들었다.그런데.

"야"


나는 인상을 확 구겼다. 눈을 뜨자 그가 상체를 세우고 나를 내려다 보고있었다. 


"키스 할래?"


나는 자세를 고쳐 누울려고 몸을 옆으로 비틀다가 멈칫했다. 둔탁한것에 머리를 쿵 맞은듯 정신이 잠깐 멍했다. 잘못 들은것 같아서 고개를 돌리고 민호를 쳐다봤다.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는 얼굴이 심하게 얄밉다.아무래도 내가 제대로 들은것 같고 이 자식은 그냥 미친것같다. 

"미친놈"
"왜? 키스하면 좀 나을것같은데" 

어떻게 웃는 얼굴에 침을 뱉나는 말이 있다만 민호와는 상관없는 얘기다 나는 히죽 웃는 얼굴에 욕을 박을수 밖에 없었다. 녀석은 여전히 심각성을 모르고 헤벌레 웃고 있다. 더 욕해줄려다 귀찮은 말싸움만 늘여놓을것 같아서 말았다.


" 굶으니까. 이제 제대로 맛이 갔구나.."


나는 단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돌아누웠다. 

"하자~응? 하자"

그렇다. 알고 지내온 바 그는 포기를 모르는 녀석이였다.민호가 내 어깨를 인정사정없이 흔들며 재촉했다. 가벼운 내 몸뚱아리가 녀석의 손아귀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나는 자리를 옮겨야 겟다는 생각으로 녀석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났다. 일어난겸 물이라도 떠오기위해 옆에 두었던 물 봉지를 들었다. 몇 방울 정도 남은 물을 입을 벌려 털어 놓을려하는 순간 물컹한게 느껴지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아랫입술을 머금은건 물이 아니라 다름아닌 민호의 입술이였다. 나는 순식간에 그에게 목덜미를 잡힌채 재빨리 침대와 사다리가 놓여져 있는 빈틈 사이로 빨려 들어왔다. 아무것도 스며들지않아 끈적한 혀가 닿아 입안에서 질척하게 굴러졌다. 타액은 시큼한 향을 내면서 마른 내 입술을 달짝지근하게 스며 들었다. 나는 그 순간만큼은 고통스러운 굶주림을 잊은 채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주체 못하고 짧은 신음을 내셨다. 아차.다른 애들의 눈도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버린 나는 조여오는 녀석의 입술을 밀어내려 애를썼지만 민호는 오랜만에 입 안으로 들어온것이 반가워 더 오래 만끽하기위해 좀 처럼 내 입술을 놓아주지 않았다.두어번의 신음을 내 뱉은 후에야 자기도 숨이 찬지 부어오른 입술을 먼저 떨어뜨렸다. 


"하.거봐. 좀 괜찮잖아"

나는 붉어질대로 붉어진 얼굴을 미처 숨기지도 못한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누군가 사다리 턱에 옷을 걸쳐놓는 바람에 다른 아이들은 못본것 같았다.나는 독기 품은 눈을 하고 민호를 노려 보았지만, 녀석은 그저 만족스러운듯 입술을 매만지면서 어,물이 비웠네 읏챠,하며 익살스럽게 걸으면서 화장실로 사라질뿐이였다.


방금 무슨일이 벌어진거지. 나는 머리속이 하얘졌다. 생각하는 것도 지쳐서 그만 대자로 뻗어버렸다. 
힘을 쭉 빼니까. 배 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나아지기는 개뿔. 허기진 배는 여전히 먹을것을 달래며 울부짖고있었다.나는 팔을 들어올려 가볍게 눈두덩이에 올렸다. 굶주림에 저절로 벌어진 입술에서 민호가 느껴졌다.조심스럽게 입술을 훑었다. 녀석의 생각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이내 그쳤다. 


'그러게.우리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우리의 관계를.. ' 

 

 

 

[민호뉴트] 같은 운명 <19금>




이 글의 설정은 원작기반으로 하며 뉴트가 다리를 다친 시점과 갤리가 그리버에 찔러 변화과정을 겪고 있는 때가 같다고 봅니다. 수위가 있으니 양해바라며 여기서 등장하는 갤리는 원작 갤리의 이미지를 떠올려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원작 1권 p 220 참고

 

 

 

 

 

 

"확실해?"

"무슨뜻이야? 확실하냐니?“

"정신병자처럼 굴게 되는게 예전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예전 삶이 지금 여기서의 삶보다 나을게 없어서 절망한 나머지 그렇게 되는 건지 말이야

 

뉴트는 깊은 생각에 잠긴 눈으로 토마스를 잠시 바라보다가 곧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 변화과정을 격은 녀석을은 그 과정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려고 하질않아. 사람이.....바뀌긴 하지. 비호감으로. 몇 명있는데 난 그 녀석들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아."

 

이 말을 하는 뉴트의 목소리는 아득했고 눈길은 멍하니 숲을 향해 있었다.  '맞아 갤리형이 그중에서 최악이야' 라는 척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뉴트는 쓰게 웃었다. 물론 둘은 보지 못했다. 뉴트는 저린 다리를 살포시 짚으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

.

 

 .

 

 

-고마워 제프

-, 이정도로.  눈에 보이는 상처는 그럭저럭 약을 발라뒀어. 하지만... 

 

 

 

 

다시 걸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제프가 나지막이 말했다. 어조에는 뜻 모를 죄책감이 묻어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괜찮다며 제프의 손을 잡으며 웃어줬다. 하지만 어딘가 힘겨워보였는지 그 모습에 제프가 더욱 울상이 되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젠 갤리가 그리버에 찔리더니, 오늘은...

 -제프..

 

더이상, 치욕스러운 현실에 눈뜨고 싶지 않았다. 뱉은 목소리에서 다 죽어가는 쉰소리가 났다. 오래 말을 안 해서 그런거 라고. 절대로 나는 이 상황이 두려워서 떨고 있지 않다고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제프는 코를 훌쩍거리며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지금껏 나를 보살핀 제프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마음이지만 난 그가 어서 자리를 떴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나 때문에 울고 있는것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괜찮은 모습을 보여야했다. 그래야 이 마음여린 소년이 웃어 줄 것 같았다. 다행히 어느 정도 진정 된 후에야 제프는 간신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래 푹셔 뉴트, 알비에게 네 상태 보고하고 올게

 

나는 말없이 끄덕이며 다정한 눈으로 문을 나서는 제프를 배웅했다. 그러자 그에 의해 가려져 있던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 누워있는 갤리를 시야에 둔 채 나는 눈을 감았다.  

-

-

몇 시간이 흘렀을까. 중천이 있던 해가 져 어느새 땅거미가 몰려오는 황혼의 어둠이 드리워졌다. 시간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사방이 조용한 것을 보니, 모두가 깊게 잠든 시간인 것 같았다. 오랜 숙면에 갈증이 났던 나는 탁자에 있는 물 컵을 잡기 위해 힘겹게 몸을 일으켜야 했다. 물을 마신 뒤 살 것 같았다. 통증 때문에 감각마저 없었던 발도 조금은 가라앉은 것 같았다

다신 걸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제프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모르겠다. 이 끔찍한 곳에서 다리가 불구된 소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차라리 혀 깨물고 죽어버리는 편이 나뿐만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도 최선이지 않을까.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참았던 눈물을 흘렀다. 나는 강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누군가 들어와 두려움 속에 일그러진 나의 맨 얼굴을 볼까봐 눈물이 흘러내리기도 전 에 닦아냈다. 오른발로 땅을 짚고, 두 손은 침대를 발판삼아 천천히 몸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끼익- 하는 낡은 용수철의 쇳소리가 났다. 지지대로 삼았던 오른발이 슬슬 힘이 풀려 벽을 짚었다.- 신음이 절로 나왔다. 천천히 왼발을 디딛는 순간 외마디 비명이 세어 나왔다. 나는 그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틀렸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가슴에 큰 덩어리가 내 몸을 좀먹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기분은 한마디로 절망적 이였다.  

 

그렇게 한참동안  어둠속에서 우두커니 웅크리고 있었다, 곧 이어 내 머리맡으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나는 살며시 고개를 들었고 그것이 갤리라는 것에 안도했다. 하지만 이내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변화과정을 겪고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라는 사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아픈 다리를 든 채로 뒷걸음질 쳤다. 서서히 달 빛에 비친 갤리의 모습이 보이자 순간 터져 나오는 비명을 감출 수 가 없었다

 

-개..갤리..

 

그의 눈은 귀신이 파먹은 것처럼 검었으며 동공은 흐릿했다.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울긋불긋 올라온 핏줄이 몸 전체를 휘감아 보는 이로 하여금 구토를 유발시키기 충분했다. 사방은 컴컴했고, 창문 너머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질 않았고 지탱하고 있는 오른발도 점차 힘이 풀렸다. 어둠은 마치 뱀처럼 온 몸을 휘감아 가느다란 혀를 날름거렸다. 빛 한줄기도 보이지도 않는 칡 흑 같은 어둠 때문에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바로 그때 거칠지 못해 투박한 손이 내 옷을 잡아당기고는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목덜미가 화끈해진 나는 는 살결에 닿은 낯선 촉감이 갤리의 손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단 한 번도 품지 못했던 다른 방향의 공포가 내 목을 졸랐다. 혀를 찌르는 불쾌감 때문에 구역질이 나올 뻔한 걸 참느라 온 몸에 난 털이 쭈뼛 서고 말았다.

 

-젠장 

 

갤리는 거침없이 내 허리를 돌린 뒤 단 숨에 잡아 올려 아래로 내리 꽂았다. 반동에 꺾어진 다리는 고칠 틈 도 없이 그대로 갤리의 무게가 더해 졌고 너무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리기도 잠시, 갤리의 손은 허리춤을 휘젓더니 묶여 있던 매듭을 빠르게 푸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 쳐봤지만 갤리의 무게로 짓눌러진 두 다리는 감각이 없어진지 오래고 갤리의 괴악스러운 힘에 눌려 꺾어진 두 팔은 위를 향해 뻣뻣하게 뻗어있을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두 팔과 두 다리가 철저히 갤리 손에 의해 묶어진 채로 나는 옴짝달싹도 못하게 되었다

 

-느구, 아므..도 없어....!!?

그대로 바닥에 짓이겨진 얼굴 때문에 발음이 뭉개졌다. 비명조차 지를  힘도 없었다. 빌어먹을.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갤리는 더욱 대담해졌다. 어느새 반쯤 벗겨진 아랫도리에 차가운 바람이 감돌았다이윽고 든 수치심에 나는 몸서리 쳤다. 갤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은 아랫춤을 주물럭거리고 다른 한손은 내 둔부를 세게 움켜졌다. 그런 다음  좁은 그 사이로 기분 나쁜 형태의 촉감이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급격히 평온함을 느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최고치의 불행에 다다르면 오히려 냉정해지는 것을 그 날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 민호가 떠올랐던 것은 무엇일까. 지금도 알 수 없었다. 그때 그 감정을 뭐라 형언할 수 없었지만 내 머리 속에 빠르게 입력된 두 글자는 다름 아닌 '민호'였다. 위협적으로 꽂아버리는 갤리의 것에 나는... 나도 모르게 흥분해버렸고 그럴수록 내 안에 민호가 더욱 선명해졌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비참했다. 닥친 상황이, 거기서 민호를 생각해 버린 내 자신이 지독하게 역겨워서 눈물이 나왔다.

 

점점 조여드는 것이 열이 오르면서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조금씩 잠겨가는 몸을 놓아버리고 눈이 스르륵 감겼다. 나는 이대로 다신 눈을 뜨지 않게 해달라고 얼굴도 모르는 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리기 직전 찰나의 빛이 번쩍거렸다. 그리고 머리 위로 문이 덜컥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허공을 가르는 짧은 바람이 일었고. ,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갤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 버러지 같은 더러운 새끼..!!

 

누군가 찢어진 목소리로 내 뱉은 욕설을 듣자, 정신이 돌아왔다. 목소리를 들으니 알비인 것 같았다. 알비는 갤리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뺨을 사정없이 쥐어 패고 바닥에 내던져 발길질을 해댔다. 나는 갑자기 들이닥친 빛 때문에 실눈을 뜨고 지켜봐야 했다. 빛에 점차 익숙해지고 비로소 눈이 조금씩 떠지는 순간,  나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민호가. 차마 제 눈앞에 어떤 일이 벌어진지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을 하고 굳어있었다. 경직된 얼굴, 속을 알 수 없는 새까만 눈동자와 불끈 즨 두 주먹이 내가 처한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입 구멍으로 삐져나온 소리를 막을 새도 없이 흐느꼈다. 그제야 나는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내 밑은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상태로 벗겨져 있었다는 것. 생전 처음 느껴보는 통증이 말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낯설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들이 하얗게 번졌다.  

 

-알비.

 

민호는 시선은 나를 지나쳐 알비를 찾았다. 그리고 곧 그의 낮고 침착한 어조에서 나는 살의를 느꼈다. 처음 이였다. 민호가 그렇게 분노한 적은. 그때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주변 공기를 쥐어짜 무겁게 굳어지는 듯 했다.

 

-당장 그 자식을 내 눈앞에 치워버려. 그리고 내가 가기 전 까지 딱 반 만 죽여놔

 

민호의 말에 알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갤리를 짐승 다루듯 끌고 나갔다민호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고개를 돌려 문 쪽으로 다가갔다. 방에 있는 가구들을 죄다 옮겨서 밖에서 문을 절대 열 수 없도록 만들었다그리고 한 참을 망설이다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에게로 내 딛는 그 몇 발자국들이 아무렇게나 휘갈겨 놓은 연필자국을 지우개로 뭉대다 만 것처럼 내 가슴을 번지고 번지게 했다. 민호는 한 쪽 무릎을 굽혀 천천히 바닥에 대었다. 나는 눈물에 젖어 퉁퉁 부운 눈을 가리기 위해  눈을 감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침묵이 우리 둘을 에워쌌다. 사방은 여전히 깜깜했고 창밖은 개 짖는 소리가 더 크게 울렸지만 전보다 무섭지 않았다.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이 이렇게 다를 줄 몰랐다. 훌쩍이는 소리가 옅어지고 움츠리고 있던 어깨의 떨림이 잦아들자. 먼저 말문을 연건 민호였다.  

 

-...어떻게 해줄까..?

 

무미건조하고 낮은 울림이 내 목덜미를 때렸다.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흠뻑 젖은 내 눈가 때문에 사방이 아른거린 탓인지는 몰라도 그도 울고 있던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해줬음 좋겠어..?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약해질 대로 약해지고 추잡한 몸뚱어리가 그가 내뱉는 단어 하나 하나에 반응해 지저분하게 꿈틀거렸다민호라면, 민호라면... 나는 입을 열었다. 불어 튼 입술이 벌어지자 이따금씩 아려오는 고통을 삼키며 나는 느릿하게 말했다.

 

 

 

 

-죽여줬음 좋겠어

 

 

이때 나는  갤리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전제를 생각할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갤리를 조금이라도 이해 할려는 마음이 생겼지만 그날은 닥친 상황과, 걸을 수 없을 거라는 뜻 모를 두려움이 뒤 섞여 이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그 날의 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밑바닥인이 세상에서 오로지 자신의 편이 되어줄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한없이 보여 주고 마는 자기방어를 무기로 동정을 구애하는 초라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래.. 알았어 

 

 

민호는 그렇게 대답하고 내가 다시 잠들 때까지 그 자리 그대로. 내 옆에 있어주었다

 

 

 -

 

 

 

그날 이후로 민호는 부쩍 말이 줄어들었다알비와 민호의 도움으로 그 사건은 민호와 알비 나, 그리고 갤리만 알고 있는 사건으로 종결되었다갤리에게 절대 입 밖으로 불지 말라고 어떤 협박을 들이댔는지 모르지만 요 몇 달간 잠잠한걸 보니, 안심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뒤로  갤리가 찾아와 몇 번이고 사과를 했지만 썩 기분이 내키진 않았다. 내 기억 속 서랍장에 깊숙이 잠가 놓은 아픈 기억이 되고 말았지만. 나는 가끔 그날의 기억을 열어 본다. 따뜻하고 다정한 민호의 품도 함께 따라와, 그리울 때면 나는 몰래 그 품을 다시 상상 하곤 했다. 하지만 매번 떠오를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민호는..왜 그때 알겠다고 한 것일까. 정말 갤리를 죽일 생각이었던 걸까. 그 물음에 걸 맞는 답을 생각하다가 계속되는 토미의 질문에 나는 생각을 잠시 중단해야했다. 이제 쓸데없는 생각은 그 정도로 해두라는 신호이기도 한 것 같아. 그의 질문을 대강 들어주고, 내일 아침 있을 회의에 대해 귀띔 해주고 본부로 돌아왔다. 본부로 들어서니, 이제 막 신발 끈을 조여매고  문밖을 나설려는 민호가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눈꼬리를 가늘게 내리면서 말했다.  

 

"어이, 뉴트. 너도 이제 가서 좀 쉬지 그래? 우리 때문에 잠 한숨도 못 잤다고 들었어." 

 

그의 미소와 함께 오른쪽에 푹 들어간 보조개는 언제나 내 기분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나를 늘 불안하게 만들게 했다.. 기억 저편에서 졸린 눈으로 그와 아침을 먹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날 아침은 토마토 스튜였다. 프라이팬의 요리 중 최악이여서  한술 뜨다만 멀건 국물을 하염없이 저으며 넌지시 그를 불렀다.

 

 

 

 

-민호 

-?

-정말 죽일 려고 했어?

-....

-아니야. 미쳤어. 갤리도 제정신이 아니었겠지

 

오전에 나한테 사과도 했는걸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간식으로 제공된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뉴트

-?

-다리 다 나아도 이 글레이드를 벗어나지마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내말은...다신 러너하지 말라고.

나는 먹다가 입맛이 없어져서 들고 있던 빵을 내려놓았다 그의 말에 일리가 있는데도 바득바득 대들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속으로 크게 흔들렸으나, 내색하지 않고 나는 대놓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비아냥거렸다

 

-민호, 너가 러너 팀장이라고 잠시 내 위치를 잊고 있었나본데...

 

내가 말을 마치기전에 민호가 나를 매섭게 노려보며 고함쳤다

 

-너 다치는거 보기 싫어!  너 어디 잘못될 때 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것 같다고......그 기분, 정말 엿 같아.

 

민호는. 말을 마친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숨을 내셨다. 나는 멍하니 민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주름진 눈에 비참함이 잔뜩 서려있었다. 바라만 봐도 절로 숙연해 질 수 밖에 없는 깊은 절망이 보였다멍하니 앞만 보고 있던 민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그러곤 잘생긴 눈썹을 들어올려, 준비해온 시를 낭송하듯 침을 연신 삼키며 말했다.

 

- 앞으로, 약속해. 너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들, 불안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 다 하나하나 일거수 일투족 나에게 말해줘뉴트.... 치프 러너로서 하는 마지막 명령이야.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고맙다

 

나는  꿀 먹은 병아리마냥 서있는 민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지나쳤다.  ..어어..말끝을 흐리며 동그란 눈으로 나를 쫓는 민호가 마침 지나가는 프라이팬 에게 저 자식 왜 그래? 뭐 잘 못 먹였어? 라고 묻는 것 같았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창 너머 민호가 서문 앞에서 스트래칭을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창틀에 살짝 기대어 앉아. 저는 다리를 살포시 짚었다

 

민호와 약속을 한 뒤로, 나는 매일 아침 홀로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 그를 보네며 하루 반나절을 불안한 마음으로 보내야 했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건방지게 대들지 못한 것을, 바락바락 소리치며 죽어도 러너 하겠다고. 네 옆모습을 보면서 나도 따라 달리겠다고 말하지 못한 것을 나는 여전히 후회하고 있다.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짊어지며 말로 다 표현 못하는 고통을 혼자 지고 있는 그 모습이 나를 그 무엇보다 불안하고 위협적이게 만든다고 내가 말 한적 있던가.

민호.

 

그러니까 오늘도, 반드시 살아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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