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뉴트] 같은 운명 <19금>




이 글의 설정은 원작기반으로 하며 뉴트가 다리를 다친 시점과 갤리가 그리버에 찔러 변화과정을 겪고 있는 때가 같다고 봅니다. 수위가 있으니 양해바라며 여기서 등장하는 갤리는 원작 갤리의 이미지를 떠올려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원작 1권 p 220 참고

 

 

 

 

 

 

"확실해?"

"무슨뜻이야? 확실하냐니?“

"정신병자처럼 굴게 되는게 예전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예전 삶이 지금 여기서의 삶보다 나을게 없어서 절망한 나머지 그렇게 되는 건지 말이야

 

뉴트는 깊은 생각에 잠긴 눈으로 토마스를 잠시 바라보다가 곧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 변화과정을 격은 녀석을은 그 과정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려고 하질않아. 사람이.....바뀌긴 하지. 비호감으로. 몇 명있는데 난 그 녀석들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아."

 

이 말을 하는 뉴트의 목소리는 아득했고 눈길은 멍하니 숲을 향해 있었다.  '맞아 갤리형이 그중에서 최악이야' 라는 척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뉴트는 쓰게 웃었다. 물론 둘은 보지 못했다. 뉴트는 저린 다리를 살포시 짚으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

.

 

 .

 

 

-고마워 제프

-, 이정도로.  눈에 보이는 상처는 그럭저럭 약을 발라뒀어. 하지만... 

 

 

 

 

다시 걸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제프가 나지막이 말했다. 어조에는 뜻 모를 죄책감이 묻어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괜찮다며 제프의 손을 잡으며 웃어줬다. 하지만 어딘가 힘겨워보였는지 그 모습에 제프가 더욱 울상이 되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젠 갤리가 그리버에 찔리더니, 오늘은...

 -제프..

 

더이상, 치욕스러운 현실에 눈뜨고 싶지 않았다. 뱉은 목소리에서 다 죽어가는 쉰소리가 났다. 오래 말을 안 해서 그런거 라고. 절대로 나는 이 상황이 두려워서 떨고 있지 않다고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제프는 코를 훌쩍거리며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지금껏 나를 보살핀 제프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마음이지만 난 그가 어서 자리를 떴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나 때문에 울고 있는것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괜찮은 모습을 보여야했다. 그래야 이 마음여린 소년이 웃어 줄 것 같았다. 다행히 어느 정도 진정 된 후에야 제프는 간신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래 푹셔 뉴트, 알비에게 네 상태 보고하고 올게

 

나는 말없이 끄덕이며 다정한 눈으로 문을 나서는 제프를 배웅했다. 그러자 그에 의해 가려져 있던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 누워있는 갤리를 시야에 둔 채 나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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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시간이 흘렀을까. 중천이 있던 해가 져 어느새 땅거미가 몰려오는 황혼의 어둠이 드리워졌다. 시간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사방이 조용한 것을 보니, 모두가 깊게 잠든 시간인 것 같았다. 오랜 숙면에 갈증이 났던 나는 탁자에 있는 물 컵을 잡기 위해 힘겹게 몸을 일으켜야 했다. 물을 마신 뒤 살 것 같았다. 통증 때문에 감각마저 없었던 발도 조금은 가라앉은 것 같았다

다신 걸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제프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모르겠다. 이 끔찍한 곳에서 다리가 불구된 소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차라리 혀 깨물고 죽어버리는 편이 나뿐만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도 최선이지 않을까.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참았던 눈물을 흘렀다. 나는 강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누군가 들어와 두려움 속에 일그러진 나의 맨 얼굴을 볼까봐 눈물이 흘러내리기도 전 에 닦아냈다. 오른발로 땅을 짚고, 두 손은 침대를 발판삼아 천천히 몸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끼익- 하는 낡은 용수철의 쇳소리가 났다. 지지대로 삼았던 오른발이 슬슬 힘이 풀려 벽을 짚었다.- 신음이 절로 나왔다. 천천히 왼발을 디딛는 순간 외마디 비명이 세어 나왔다. 나는 그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틀렸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가슴에 큰 덩어리가 내 몸을 좀먹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기분은 한마디로 절망적 이였다.  

 

그렇게 한참동안  어둠속에서 우두커니 웅크리고 있었다, 곧 이어 내 머리맡으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나는 살며시 고개를 들었고 그것이 갤리라는 것에 안도했다. 하지만 이내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변화과정을 겪고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라는 사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아픈 다리를 든 채로 뒷걸음질 쳤다. 서서히 달 빛에 비친 갤리의 모습이 보이자 순간 터져 나오는 비명을 감출 수 가 없었다

 

-개..갤리..

 

그의 눈은 귀신이 파먹은 것처럼 검었으며 동공은 흐릿했다.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울긋불긋 올라온 핏줄이 몸 전체를 휘감아 보는 이로 하여금 구토를 유발시키기 충분했다. 사방은 컴컴했고, 창문 너머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질 않았고 지탱하고 있는 오른발도 점차 힘이 풀렸다. 어둠은 마치 뱀처럼 온 몸을 휘감아 가느다란 혀를 날름거렸다. 빛 한줄기도 보이지도 않는 칡 흑 같은 어둠 때문에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바로 그때 거칠지 못해 투박한 손이 내 옷을 잡아당기고는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목덜미가 화끈해진 나는 는 살결에 닿은 낯선 촉감이 갤리의 손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단 한 번도 품지 못했던 다른 방향의 공포가 내 목을 졸랐다. 혀를 찌르는 불쾌감 때문에 구역질이 나올 뻔한 걸 참느라 온 몸에 난 털이 쭈뼛 서고 말았다.

 

-젠장 

 

갤리는 거침없이 내 허리를 돌린 뒤 단 숨에 잡아 올려 아래로 내리 꽂았다. 반동에 꺾어진 다리는 고칠 틈 도 없이 그대로 갤리의 무게가 더해 졌고 너무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리기도 잠시, 갤리의 손은 허리춤을 휘젓더니 묶여 있던 매듭을 빠르게 푸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 쳐봤지만 갤리의 무게로 짓눌러진 두 다리는 감각이 없어진지 오래고 갤리의 괴악스러운 힘에 눌려 꺾어진 두 팔은 위를 향해 뻣뻣하게 뻗어있을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두 팔과 두 다리가 철저히 갤리 손에 의해 묶어진 채로 나는 옴짝달싹도 못하게 되었다

 

-느구, 아므..도 없어....!!?

그대로 바닥에 짓이겨진 얼굴 때문에 발음이 뭉개졌다. 비명조차 지를  힘도 없었다. 빌어먹을.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갤리는 더욱 대담해졌다. 어느새 반쯤 벗겨진 아랫도리에 차가운 바람이 감돌았다이윽고 든 수치심에 나는 몸서리 쳤다. 갤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은 아랫춤을 주물럭거리고 다른 한손은 내 둔부를 세게 움켜졌다. 그런 다음  좁은 그 사이로 기분 나쁜 형태의 촉감이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급격히 평온함을 느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최고치의 불행에 다다르면 오히려 냉정해지는 것을 그 날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 민호가 떠올랐던 것은 무엇일까. 지금도 알 수 없었다. 그때 그 감정을 뭐라 형언할 수 없었지만 내 머리 속에 빠르게 입력된 두 글자는 다름 아닌 '민호'였다. 위협적으로 꽂아버리는 갤리의 것에 나는... 나도 모르게 흥분해버렸고 그럴수록 내 안에 민호가 더욱 선명해졌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비참했다. 닥친 상황이, 거기서 민호를 생각해 버린 내 자신이 지독하게 역겨워서 눈물이 나왔다.

 

점점 조여드는 것이 열이 오르면서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조금씩 잠겨가는 몸을 놓아버리고 눈이 스르륵 감겼다. 나는 이대로 다신 눈을 뜨지 않게 해달라고 얼굴도 모르는 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리기 직전 찰나의 빛이 번쩍거렸다. 그리고 머리 위로 문이 덜컥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허공을 가르는 짧은 바람이 일었고. ,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갤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 버러지 같은 더러운 새끼..!!

 

누군가 찢어진 목소리로 내 뱉은 욕설을 듣자, 정신이 돌아왔다. 목소리를 들으니 알비인 것 같았다. 알비는 갤리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뺨을 사정없이 쥐어 패고 바닥에 내던져 발길질을 해댔다. 나는 갑자기 들이닥친 빛 때문에 실눈을 뜨고 지켜봐야 했다. 빛에 점차 익숙해지고 비로소 눈이 조금씩 떠지는 순간,  나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민호가. 차마 제 눈앞에 어떤 일이 벌어진지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을 하고 굳어있었다. 경직된 얼굴, 속을 알 수 없는 새까만 눈동자와 불끈 즨 두 주먹이 내가 처한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입 구멍으로 삐져나온 소리를 막을 새도 없이 흐느꼈다. 그제야 나는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내 밑은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상태로 벗겨져 있었다는 것. 생전 처음 느껴보는 통증이 말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낯설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들이 하얗게 번졌다.  

 

-알비.

 

민호는 시선은 나를 지나쳐 알비를 찾았다. 그리고 곧 그의 낮고 침착한 어조에서 나는 살의를 느꼈다. 처음 이였다. 민호가 그렇게 분노한 적은. 그때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주변 공기를 쥐어짜 무겁게 굳어지는 듯 했다.

 

-당장 그 자식을 내 눈앞에 치워버려. 그리고 내가 가기 전 까지 딱 반 만 죽여놔

 

민호의 말에 알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갤리를 짐승 다루듯 끌고 나갔다민호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고개를 돌려 문 쪽으로 다가갔다. 방에 있는 가구들을 죄다 옮겨서 밖에서 문을 절대 열 수 없도록 만들었다그리고 한 참을 망설이다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에게로 내 딛는 그 몇 발자국들이 아무렇게나 휘갈겨 놓은 연필자국을 지우개로 뭉대다 만 것처럼 내 가슴을 번지고 번지게 했다. 민호는 한 쪽 무릎을 굽혀 천천히 바닥에 대었다. 나는 눈물에 젖어 퉁퉁 부운 눈을 가리기 위해  눈을 감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침묵이 우리 둘을 에워쌌다. 사방은 여전히 깜깜했고 창밖은 개 짖는 소리가 더 크게 울렸지만 전보다 무섭지 않았다.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이 이렇게 다를 줄 몰랐다. 훌쩍이는 소리가 옅어지고 움츠리고 있던 어깨의 떨림이 잦아들자. 먼저 말문을 연건 민호였다.  

 

-...어떻게 해줄까..?

 

무미건조하고 낮은 울림이 내 목덜미를 때렸다.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흠뻑 젖은 내 눈가 때문에 사방이 아른거린 탓인지는 몰라도 그도 울고 있던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해줬음 좋겠어..?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약해질 대로 약해지고 추잡한 몸뚱어리가 그가 내뱉는 단어 하나 하나에 반응해 지저분하게 꿈틀거렸다민호라면, 민호라면... 나는 입을 열었다. 불어 튼 입술이 벌어지자 이따금씩 아려오는 고통을 삼키며 나는 느릿하게 말했다.

 

 

 

 

-죽여줬음 좋겠어

 

 

이때 나는  갤리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전제를 생각할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갤리를 조금이라도 이해 할려는 마음이 생겼지만 그날은 닥친 상황과, 걸을 수 없을 거라는 뜻 모를 두려움이 뒤 섞여 이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그 날의 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밑바닥인이 세상에서 오로지 자신의 편이 되어줄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한없이 보여 주고 마는 자기방어를 무기로 동정을 구애하는 초라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래.. 알았어 

 

 

민호는 그렇게 대답하고 내가 다시 잠들 때까지 그 자리 그대로. 내 옆에 있어주었다

 

 

 -

 

 

 

그날 이후로 민호는 부쩍 말이 줄어들었다알비와 민호의 도움으로 그 사건은 민호와 알비 나, 그리고 갤리만 알고 있는 사건으로 종결되었다갤리에게 절대 입 밖으로 불지 말라고 어떤 협박을 들이댔는지 모르지만 요 몇 달간 잠잠한걸 보니, 안심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뒤로  갤리가 찾아와 몇 번이고 사과를 했지만 썩 기분이 내키진 않았다. 내 기억 속 서랍장에 깊숙이 잠가 놓은 아픈 기억이 되고 말았지만. 나는 가끔 그날의 기억을 열어 본다. 따뜻하고 다정한 민호의 품도 함께 따라와, 그리울 때면 나는 몰래 그 품을 다시 상상 하곤 했다. 하지만 매번 떠오를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민호는..왜 그때 알겠다고 한 것일까. 정말 갤리를 죽일 생각이었던 걸까. 그 물음에 걸 맞는 답을 생각하다가 계속되는 토미의 질문에 나는 생각을 잠시 중단해야했다. 이제 쓸데없는 생각은 그 정도로 해두라는 신호이기도 한 것 같아. 그의 질문을 대강 들어주고, 내일 아침 있을 회의에 대해 귀띔 해주고 본부로 돌아왔다. 본부로 들어서니, 이제 막 신발 끈을 조여매고  문밖을 나설려는 민호가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눈꼬리를 가늘게 내리면서 말했다.  

 

"어이, 뉴트. 너도 이제 가서 좀 쉬지 그래? 우리 때문에 잠 한숨도 못 잤다고 들었어." 

 

그의 미소와 함께 오른쪽에 푹 들어간 보조개는 언제나 내 기분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나를 늘 불안하게 만들게 했다.. 기억 저편에서 졸린 눈으로 그와 아침을 먹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날 아침은 토마토 스튜였다. 프라이팬의 요리 중 최악이여서  한술 뜨다만 멀건 국물을 하염없이 저으며 넌지시 그를 불렀다.

 

 

 

 

-민호 

-?

-정말 죽일 려고 했어?

-....

-아니야. 미쳤어. 갤리도 제정신이 아니었겠지

 

오전에 나한테 사과도 했는걸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간식으로 제공된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뉴트

-?

-다리 다 나아도 이 글레이드를 벗어나지마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내말은...다신 러너하지 말라고.

나는 먹다가 입맛이 없어져서 들고 있던 빵을 내려놓았다 그의 말에 일리가 있는데도 바득바득 대들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속으로 크게 흔들렸으나, 내색하지 않고 나는 대놓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비아냥거렸다

 

-민호, 너가 러너 팀장이라고 잠시 내 위치를 잊고 있었나본데...

 

내가 말을 마치기전에 민호가 나를 매섭게 노려보며 고함쳤다

 

-너 다치는거 보기 싫어!  너 어디 잘못될 때 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것 같다고......그 기분, 정말 엿 같아.

 

민호는. 말을 마친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숨을 내셨다. 나는 멍하니 민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주름진 눈에 비참함이 잔뜩 서려있었다. 바라만 봐도 절로 숙연해 질 수 밖에 없는 깊은 절망이 보였다멍하니 앞만 보고 있던 민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그러곤 잘생긴 눈썹을 들어올려, 준비해온 시를 낭송하듯 침을 연신 삼키며 말했다.

 

- 앞으로, 약속해. 너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들, 불안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 다 하나하나 일거수 일투족 나에게 말해줘뉴트.... 치프 러너로서 하는 마지막 명령이야.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고맙다

 

나는  꿀 먹은 병아리마냥 서있는 민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지나쳤다.  ..어어..말끝을 흐리며 동그란 눈으로 나를 쫓는 민호가 마침 지나가는 프라이팬 에게 저 자식 왜 그래? 뭐 잘 못 먹였어? 라고 묻는 것 같았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창 너머 민호가 서문 앞에서 스트래칭을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창틀에 살짝 기대어 앉아. 저는 다리를 살포시 짚었다

 

민호와 약속을 한 뒤로, 나는 매일 아침 홀로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 그를 보네며 하루 반나절을 불안한 마음으로 보내야 했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건방지게 대들지 못한 것을, 바락바락 소리치며 죽어도 러너 하겠다고. 네 옆모습을 보면서 나도 따라 달리겠다고 말하지 못한 것을 나는 여전히 후회하고 있다.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짊어지며 말로 다 표현 못하는 고통을 혼자 지고 있는 그 모습이 나를 그 무엇보다 불안하고 위협적이게 만든다고 내가 말 한적 있던가.

민호.

 

그러니까 오늘도, 반드시 살아 돌아와.